“오늘 날씨 따뜻하죠?”
머리를 감겨주던 헤어숍 어시스턴트가 물었다.
“네, 그렇네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오늘 머리하고 바로 댁으로 가시나요?” 또 직원이 묻는다.
“네에..”
다시 짧게 대답하고 나는 뭔가 대답에 살을 붙여 호응해줘야 하는지 잠시 망설였다.
“이번 수요일에 제 월차 휴가일인데 갈데가 없네요.”
들어올 때 안내해주던 직원인지라 얼굴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보아서는 이십대 초반의 앳된 남학생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조금 뜨겁습니다. 온도 괜찮으시죠?”
목 뒤에 뜨끈한 찜질 수건을 가져다대며 직원이 물었다.
“네에…”
월요일 아침 수업탓에 긴장했던 목덜미에서부터 어깨까지 긴장이 한순간에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날씨도 좋은데 데이트라도 가시면 되겠네요.”
이번엔 좋은 서비스에 대한 답례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는지 조금 말을 붙여보았다.
“아, 그러면 좋겠는데, 제가 얼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든요. 저보다 네 살 어린 친구였는데…”
하며 직원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나쁜 점에 대해서, 어떤 문제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여자를 사귀고 싶은지에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식상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머리 구석구석을 부드럽고 힘있는 손놀림으로 마사지해주고 있었던 터라, 나는 마치 콧등을 애무당하는 한마리의 고양이처럼 눈을 감고서 ‘어이구우’, ‘아아’ 하며 맞장구를 쳐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굳어있던 근육들이 차츰 말랑말랑 해지면서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사그라드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반대로 내가 나의 사생활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할 때 쯤, “수고하셨습니다.”하며 직원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순간 왠지 모든 손님들에게 기계적으로 던지는 대화에 내가 괜히 마음을 열었나 싶어 무안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모든 손님들에게 똑같은 말들을 던져놓고는 각기 다른 타이밍에 다른 부위를 마사지하며 그에 따른 상반된 태도와 반응을 살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근육의 경직도가 인간의 타인에 대해 갖는 경계심리에 미치는 영향’따위의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하여간 머리를 말리는 동안 아주 상쾌한 기분이 들어, 그 시덥지않은 대화조차 아주 좋은 느낌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