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고 잇기

다시금 홈페이지를 열고 오래전의 글들을 정리한다.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도 이제 빛이 바래어 제법 아취가 있다. 이십 대 초반의 푸릇한 마음에서 시작되어 삼십 대 초반에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다가 마흔이 되어가며 여러 좌절과 위기를 맛보는, 그리고 결국 결혼에 골인하여 해필리 에버 애프터- 식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글을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꼈다가, 감탄을 하기도 하고 또 눈살을 조금 찌푸리기도 했다. 참 열심히도 살았다. 왜 진즉 이런 계기를 갖지 못했을까. 다 사정이 있었고, 지금에서야 지난 과거를 조망할 수 있는 운명이었겠지만, 조금 더 일찍 나의 현재와 과거를 엮어 잇는 작업을 시작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현재의 내 모습에 어떤 과거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있는 것인지, 어떤 과거의 찬란함이 남아 있는 것인지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라는 단단한 토대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Jan 14, 2025

뉴욕에 도착한 지 일주일. 레지던시가 시작하기 전 일주일 정도는 런던에서처럼 이곳저곳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런던에서는 아내가 탈이 나더니 여기에서는 내가 탈이 났다. 관광객의 마음으로 도시를 돌아다니면 뭐 하나라도 더 봐야 하고 또 이왕이면 좋은 곳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좋은 것을 많이 보긴 해도 금세 지치고 만다. 이곳에서의 하루가 얼마짜리 하루인지를 계산하다 보니 잠시 멍하니 쉬는 시간마저도 아깝게 느껴지는가보다. 아무튼 어제부터 이곳에서의 아티스트인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관광객의 생활을 끝내고 다시 생활인의 루틴으로 돌아왔다. 일부러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아닌데, 무언가 보러 가야겠다는 욕구도 사라지고, 아침 일곱시에 요가를 하고 낮 동안 각자의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가 함께 저녁을 먹고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생활로 다시 돌아왔다. 며칠 전 윌리암스버그의 작은 상점들을 둘러보다가, 맥널리존슨 서점에 가서 문득 집어 든 틱낫한 스님의 책의 한 페이지를 아내와 같이 읽었는데 그 중 한 구절이 생각났다. 무언가 쫓는 일은 너를 불행하게 한다. 그러니 쫓는 일을 멈추라, 그러면 행복을 느낄 것이다. ‘에이, 그러면 뭐 아무것도 이룰 것도 없겠지-’ 하며 그때는 그 말이 시시해서 입을 비죽거렸었는데,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말.

Jan 7, 2025

런던에서의 열흘 정도 휴가를 끝내고 뉴욕으로 간다. 도시는 어떤 면에서 사람을 경험하는 것과 비슷하다. 매일 다른 경험을 할 때마다 다른 감상과 감정을 갖게 된다. 어떤 날은 수많은 관광객과 비싼 물가에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작고 예쁜 상점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발견하면 또 도시에 대한 경계심이 풀려버린다. 그러다 이곳에 오래 살아온 친구를 만나 도시를 경험하면 그들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오래 살아서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 친구를 만나면 도시가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또 이제 막 정착한 친구를 만나면 도시가 흥미롭게 보인다. 언제든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과 얘기하면 나도 어서 탈출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뭐, 섣부르게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처럼, 도시의 일면만 보고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될 일이지만, 나는 그저 그때 느껴지는 도시의 인상을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설령 어제와 오늘의 느낌이 다르더라도. 사람도 만나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하며 친해지는 것처럼 우당탕 미워하고 또 좋아하며 친해지는 느낌이 좋다. 아무튼 이번에 런던을 방문하기까지는 런던이 미웠지만 이번에는 좋은 사람과 함께여서, 또 좋아하는 친구들이 함께 해주어 도시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또 보자 런던!

Jan 1, 2025

한국에서 8,854 km 떨어진 런던에서 맞이하는 새해. 독일과 미국에서의 레지던시 생활을 계획하며 중간 기착지로 런던을 넣은 이유는 딱히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말 그대로 가는 길에 있는 대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화란도 나도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에는 젬병인 것은 알았지만, 연말을 런던에서 보내고자 하는 관광 인파가 이토록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옥스포드 서커스 근처에 숙소를 잡고 소호와 코벤트가든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둘 다 병이 나고 말았다.

마지막 날엔 한국 슈퍼마켓에서 사 온 재료들로 두부김치와 만두를 쪄먹으며 2024년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사진첩을 넘겨보았다. 우리 참 대견하다- 참 잘했다- 수고했다- 서로 다독이며 우리가 없어도 잘 지내는 가족과 동물들을 그리워하였다. 또 내년 이맘때 우리는 어디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될까.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이 즐겁고 애틋하다. 2025년에도 그렇게 우리답게 설레는 삶을 살아야겠다.

November 29, 2024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며 모든 짐을 컨테이너 한 대 분량으로 구겨넣었어야 했기에, 그동안 이고 지고 다니던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일단은 가지고 있기로 했는데, 더는 무게가 나가고 자리를 차지하는 책은 사고 싶지 않았다. 언제든 다시 꺼내어 들춰보고 연구하거나 인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고서는 종이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다. 읽지 않은 책의 무게까지 생각하면 책장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 지경.

상대적으로 심심한 도시에 와서- 소셜미디어의 가십이나 뉴스가 아닌 뭔가 다른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전자책을 읽기로 했다. 이왕이면 영어로 된 책을 읽어보자, 하고 어느 유튜버의 추천 도서를 다운로드 했다. 최대한 가볍고 재미있는 소설 위주로 추천해 준 목록이었는데, 그 중 처음 완독한 책이 미국의 젊은 작가 콜린 후버의 소설 ‘Verity’였다. 아무런 기대도, 스토리에 대한 정보도 없이 읽어나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현대 소설이라면, 아멜리 노통브나, 얼마 전에 작고한 폴 오스터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후버의 소설도 그들의 책을 읽을 때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그들의 작품보다 덜 진지하고, 더 가벼웠다. 하지만 대중적인 성공으로 따지자면 후버가 좀 더 나은 듯 하다.

예전에도 소설보다는 인문 서적에 익숙하고, 소설을 읽더라도 고전 위주로 읽었었다 보니, 그녀의 소설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문장에 어떤 특별한 힘이 느껴진다기보다. 반전과 스릴이 있는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데에 특기가 있는 작가인 듯했다. 요즈음 스트리밍 시리즈를 보는 듯한, 혹은 그것을 염두에 둔 듯 한 자극적인 내용의 소설. 아내에게 농담삼아 삼 분의 일은 섹스, 삼 분의 일은 공포, 나머지는 스릴러로 채워진 소설이다-고 할 정도로, 재미에 충실한 소설이었다.

나에게 첫 영어 원서 완독 경험을 선물해 준 책이므로
별점 ⭐️⭐️⭐️ 개를 준다.

December 22, 2024

라이프치히 레지던시 생활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베를린. 두 달 전, 베를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긴 여정을 앞두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이 도시를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였다. 그 두려움은 아마도 낯선 사람들의 시선이나 낯선 외국어가 아니라 고양이도 강아지도 없이 우리 둘만 뚝 떨어져서 과연 잘 생활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서로 지치지는 않을까, 싸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을 것이다. 두 달 동안 지내며 알게 된 것은, 우리는 가끔 지쳐도 괜찮고 또 가끔 다투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 불안은 자연히 해소되고 우리 사이에 믿음과 사랑이 한층 더 굳건해진 듯하다. 그렇게 단단한 마음으로 돌아온 베를린의 겨울은 역시나 차갑고 우중충해 보이지만, 우리는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느 도시에 어떤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지어지는 집이 얼마나 단단한 지반 위에 지어지고 있는지, 얼마나 환기가 잘 되고 또 단열이 잘 되어 따뜻한지- 그런 것이 더 중요하다. 마음에 지어진 집이 좋으면 어디라도 괜찮을 것이다. 라이프치히에서 지난 두달 동안,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카를-하이네-슈트라세를 지나 작업실로 향할 때,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경쾌하게 페달을 밟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아내의 씩씩함을 사랑한다.
우리는 또 다른 도시로 떠날 것이다.

Dec 16, 2024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 가족들에게는 낯설기만 했던 이름의 도시에서의 두 달여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오늘은 무얼 사다 먹을까, 냉장고 속 재료들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비워낼까-하던 고민은 그만하고 오늘은 불쑥 벼르던 프렌치 레스토랑엘 갔다. 파이널 쇼의 작품도 걸었고, 오전에는 작업실에 펼쳐둔 그림과 재료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던 길이라 괜히 마음이 헛헛하기도 했다. 진즉 이렇게 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도 사 먹고 할 걸- 너무 아꼈나 싶다. 오랜만에 좋은 와인에 좋은 음식을 앞에 두고 프렌치 스타일로 세 시간 넘게 흡족한 저녁을 먹었다.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당신이 없었다면 그런 날들도 없었을 것-이라고 아내에게 고백하였다. 내가 그리던 그림은, 당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관한 그림들이었다-고 말했다. 아마도 몇 년이 지나도 이곳과 비슷한 공기를 맡으면 금세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은 온전한 저녁이었다. 이제 또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된 것 같다.

December 5, 2024

아침에 요가를 가는 것과 더불어, 하나씩 둘씩 루틴을 만들어간다. 그중 하나가 서예. 단지 붓글씨를 연습하는 것 말고, 의미 있는 공부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불교의 핵심 교리를 담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을 써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생을 쓰고 있자니, 쓰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통한 기분이 든다. 늘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하던 내용을 당나라 현장법사가 번역하며 한자 한자 적어내려가며 쓸 때의 비장함과 희열이 느껴지는 것 같달까. 아무래도 과장이 좀 많이 섞인 듯 하지만, 불교의 공 사상의 요체가 담긴 참으로 기막힌 문장이다.

내가 붓을 움직여 글자를 쓰고 있지만, 글자가 쓰인 종이도 공하며 먹물도 공한 것이다. 먹물도 종이도 종이가 되기 이전에는 나무였고, 나무가 자라기 위해 비가 내려야 했으며, 비가 내리기까지 구름이 만들어졌어야 했으니, 종이는 종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인연의 과정이 함께 있는 것. 그래서 종이는 공하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이기도 하다.- 는 것.

불교 사상의 요체를 설명하면서 공, 을 설명하는 것이 마치 바가바드기타의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과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몸은 무상한 것이어서, 죽음으로 끝나거나 태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설명하는 대목 말이다. 또 어쩌면 임마누엘 레비나스가 시간과 타자의 서두에서 절대적인 ‘무’를 상정해보자 하는 대목과도 비슷하다고 해도 괜찮을까.

아내와 함께하는 요가

아내는 요가 수련자다. 우리의 결혼 생활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때, 아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침마다 요가를 가는 일이었다. 마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에게 가장 올바른 치유법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아내가 존경스러웠다. 아내가 요가를 시작한 올 봄 이후로, 우리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던 여러 불안 요소들이 잦아들고 가정에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요가의 순기능을 곁에서 목격한 그때부터 나는 이미 요가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어떤 경외심마저 갖고 있었다. 요가원에서 과연 어떤 체험을 하기에, 그녀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불안과 불만을 단번에 꺼트릴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나에게 요가는 너무도 거대한 세계였기에 섣부르게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운동보다는 홀로 자유롭게 달리기를 하며 긴장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나에게 더 맞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내가 요가를 가는 길에 나를 남산 둘레길에 내려주면 나는 한 시간 정도 달리고 나서 남산 도서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돌아오는 아내의 차를 얻어 타고 함께 집에 오는 것이 우리의 아침 일상이었다. 그렇게 온전한 아침을 보내고 나면 우리의 하루는 이미 알차고 뿌듯한 기분이 되어 저녁까지도 충만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곳 독일에서도 아내가 요가원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낯선 언어와 환경 탓에 쭈뼛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배워 보고 싶으니 같이 가보자고 아내를 부추겼다. 사실 아내가 잘 적응할 때까지 몇 번 같이 가보고, 나는 다시 같은 시간에 달리기를 할 심산이었다. 그렇게 한 번 체험해 보고, 두 번, 세 번 가다 보니 벌써 일주일 넘게 아침 저녁으로 요가원을 다니고 있다. 어떤 극적인 체험처럼 과장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요가를 앞으로 계속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일었다. 어떤 육체적인 단련과 이완에 있어서도 완벽한 운동이기도 했고, 사바사나- 라고 하는 요가의 마지막 순서를 하고 일어났을 때 나의 마음가짐이 너무나 달라져있음을 매일 체험하고 나니, 이것은 참 좋은 경험이다- 라는 생각만이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어렵고 낯선 동작들을 따라 할 때는 중 고등학교 때 얼차려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다 하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또, 죽은 듯 누워 숨만 쉬고 있을 때는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죽음의 순간이 이렇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조금 과장된 생각이지만, ‘오늘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까?’하는 생각을 매일 한 번쯤 해보는 일이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끼치는 좋은 영향이 틀림없이 있었다. 어쩐지 더 자비롭고 더 생기가 도는 기분이랄까. 마치 처음 하프 마라톤을 뛰어보고는 러너스하이를 느껴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일주일 밖에 요가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참 말이 많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음 아내와 요가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이십 대와 삼십 대를 지나며 철학에 대한 짝사랑으로 읽어왔던 수많은 인문 철학 서적들, 나의 독서 편력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던 철학이 바로, 인도의 고전 철학이었다. 누구에게도 추천해 본 적도 없고, 단지 혼자서 나만의 경전이라 생각하고 읽어오던 책이 ‘바가바드기타’인데, 아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다른 경험을 해왔는데도, 아내와는 이 경전 속의 말들이 쉬이 통한다. 요가를 글로 배운 사람과 요가를 몸으로 이해한 사람이 나누는 대화랄까.

우리 둘만의 또다른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서 기쁘다.

November 6, 2024

우리가 머무는 숙소는 라이프치히 도심에서 서쪽으로 이십 분쯤 떨어진 곳이다. 이 도시는 가운데에 강이 흐른다기보다, 작은 하천이 흐르고 거대한 공원이 도시의 동쪽과 서쪽을 나누고 있다. 그래서 도시를 이동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크고 작은 숲과 공원을 지나서 가게 되는데, 도로 가운데로 노면전차가 다니고 또 폭이 좁다 보니, 자동차보다는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 이곳에 온 지 한 달이 지나가도록 교통체증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공기는 맑고 거리는 깨끗하다. 자전거 앞뒤로 아이들 두어 명을 태우고 다니기가 다반사며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법한 아이들도 아장아장 자전거를 곧잘 탄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뺨에 빨갛게 핏기가 돌아 건강해 보인다.

달리기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 길어졌다. 이곳의 달리기나 서울 달리기나 마음가짐에 따라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이곳에서 달리기할 때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서울에서는 달리기를 하다 마주 오는 러너를 만나면, 눈을 마주칠까, 시선을 피할까,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달릴까 늘 고민이 된다. 괜히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위아래로 흘겨보며 내 주법을 평가한다거나 착장을 체크하는 기분이 들어서 신경이 쓰인다. 인스타그램이나 스레드에 가 보면 주법이 어쩌니, 심박수가 어쩌니, 브랜드가 어쩌니 말들이 많다. 나는 그저 달리는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인데. 아무래도 그런 말들이 많으니 신경이 쓰인다. 아마도 그래서 늘 혼자 뛰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다.

이곳 사람들도 물론 착장을 따지고, 킬로미터당 속도를 따지고 케이던스를 재고 하겠지만, 내가 만난 라이프치히 러너들은 적어도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일단 아침에 부랴부랴 대충 춥지 않을 정도로만 주워 입고 나온 — 독일인들의 평상복도 그러하지만 — 듯한 복장으로 설렁설렁 뛰는 모습에서부터 무척 정감이 간다. 처음에는 마주 달려오는 사람이 있으면 서울에서처럼 눈을 피하거나 바닥을 보고 달렸는데, 조금 익숙해지니 다들 눈을 마주치려고 시선을 던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건네주는 일을 몇 번 겪게되었다. 이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고 나니, 마주 달려오는 사람들이 반갑게 느껴지고 나도 선뜻 먼저 인사를 나누게 되고 아침 달리기도 더 즐겁고 상쾌한 경험이 되었다. ‘너도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었을 텐데 달리기 하러 나왔구나!’ 하고 반겨주는 것만 같다.

살아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끼리도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말없이 자연스럽게 응원의 메세지를 나눌 수 있다면 팍팍한 하루도 그럭저럭 견딜만하지 않을까.

I AM FREE THEREFORE I AM LOST

라이프치히 에서의 하루하루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간다. 낯선 곳에서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 적절한 동선과 괘도를 찾아가는 서로의 적응력을 칭찬한다. 어머니에게 맞춰진 것도 아니고, 방울이나 까망이에 맞춰진 생활도 아닌,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위해 엮어나가는 하루. 규칙을 세우고 맞지 않는 것은 조금씩 조정해 나간다. 함께 해서 좋은 것은 둘이 함께 세운 계획과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응원해 주고 칭찬해 줄 수 있기 때문.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서로 지켜봐 주고 서로 믿음을 실어 주면 불가능한 것이 없을 것만 같다.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는 한편, 그동안 웅크린 채 몸을 숨기고 있던 불안을 좇는 마음이 어느새 고개를 내민다.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 길을 잃은 듯한 기분과, ‘멋있는 그림을 그려야지-’ 하는 탐욕스러운 마음이 이리저리 뒤섞여 안절부절 불안을 조장하였다. 그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의미로 주말여행을 계획했다. 아내가 흔쾌히 허락해 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먼저 가자고 한 내가 책임지고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야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이백 오십 킬로미터 쯤 떨어진 곳, 기차로 네 시간쯤 가야만 했다. 소질은 없지만 얼기설기 계획을 세우고 조금 우왕좌왕 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프라하 구석구석을 구경하였다. 생각보다 많은 관광객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구시가지 가득 들어찬 인파를 뚫고 카를교를 지나 프라하와 성비투스 대성당까지 이름난 관광지들을 손잡고 천천히 돌아다녔다. 파리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사람들은 도도하지 않고 소탈한 성격이어서 좋았다. 낮에는 조금 꾀죄죄해 보였지만 밤에는 노오란 나트륨등, 가스등이 도시를 더욱 고색창연하게 물들여 아름답게 빛났다.

프라하라는 도시를 떠올렸을 때, 내가 오로지 관심 있던 것은 카프카였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였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 묘사된 도시의 풍경들, 낯선 이름들, 깊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을 보니 그의 단편소설 속을 걷는 듯했다. 의도치 않게 들른 카프카 서점에서 나는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천가방을, 화란은 카프카의 문구가 새겨진 천가방을 구했다.

‘I AM FREE THEREFORE I AM LOST‘

자유롭기 때문에 불안이 곁에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게다.

October 13, 2024

다시 오 년 만의 베를린. 그때는 도망치듯 와서 다시 도망치듯 떠났지만, 지금은 다른 마음. 내가 좋아하는 이 도시를 다시 아내의 눈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파리에서도 그랬지만, 마치 내가 즐겨 읽었던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상대방도 꼭 같이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아내도 베를린과 사랑에 빠지길 바랐다. 우리가 도착한 다음 날부터 맑게 갠 하늘, 깨끗한 공기, 아직 넉넉히 온기를 전해주는 가을 햇살 덕분에 도착한 지 이틀이 되어서도 마냥 좋기만 했다. 이 자유를 얻어내기 위해 함께 계획하고 고생한 지난 몇 달간의 일들이 떠오르고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아침에는 시민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고 뵈스너 화방에 들러 처음 보는 미술 재료들을 신나게 주워 담았다. 숙소가 있는 콜비츠슈트라쎄에 열린 주말 장터에서 이것저것 집어먹고, 저녁에는 나의 오랜 친구 필립을 만나 저녁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마음의 평온과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 그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는지를 얘기했고, 고양이와 예술에 대해, 음식과 사랑, 정치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그도 나도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전과는 다른 삶을 바쁘게 살아왔지만, 앞으로 가고자 하는 길은 아직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예전에도 와본 적 있는 카피탈리스트 바에서 기분 좋게 모스코뮬을 마셨다. 다시 찾은 베를린. 이번에는 도망쳐 오지 않았으므로, 다시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다.

September 29, 2024

이제 나도 한군데 둥지를 틀고 정착하나 싶었는데, 여전히 2년 단위의 이주 인생. 한군데 머물러 사는 것은 내 사주에 없는가보다. 가축들 먹일 풀 찾아 떠도는 유목민처럼, 권태를 느끼며 풀썩 주저앉은 정신에는 호기심을 던져주고, 허기를 느껴 이리저리 킁킁대는 감각에는 긴장감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려, 우리는 떠난다. 그런 결정들을 하게 만든 일련의 운명적 계기들과 우리의 결정들을 순순히 도와주는 우연적인 사건들이 너무나도 신비롭기만 하다.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고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양도할 것은 양도하고, 또 부탁해야 할 것들은 정성을 다해 부탁하느라 바빴던 9월. 우리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흔들리지 않고 함께 해 준 아내가 고맙다.

August 20, 2024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언제든 나가서 달리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달리기를 통해 체중을 줄인다거나 체력을 기른다든가 하는 목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달리기가 좋아서 뛴다. 땀에 흠뻑 젖어 뛰고 있으면 꼭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다. 놀이터에서 밤늦도록 뛰어놀던 세대라서 그런지, 달리다 보면 괜히 철없는 소년이 된 것만 같고 그 시절 어느 날의 어떤 냄새라던가, 분위기 같은 것들이 구체적인 맥락 없이 자꾸 떠올라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달리기가 즐겁다. 자유롭다.

요가에 흠뻑 빠져있는 아내가 요즘 달리기에 적극적이다. 운동화를 하나 선물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남산 둘레길과 홍제천, 그리고 잠수교를 건너는 달리기 코스를 소개시켜 주었다. 달리기는 혼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와 함께 달리는 것도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달리기를 하다보면 하늘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여름 하늘에 층층이 쌓인 구름들이 무척 보기 좋은 요즘이다. 가을의 하늘은 또 얼마나 높고 푸르를지 기대가 된다.

July 30, 2024

한바탕 소나기처럼 여름이 지나간다. 전시 준비하느라 고생했다며 아내가 스시를 사줬다. 그동안의 긴장감이 스스륵 풀려버렸는지, 맥주 두잔에 취해서 집에 오자마자 둘 다 쓰러져 잠들었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열심히였던 만큼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든 여름이었다. 아내가 고맙다

July 10, 2024

매미 소리가 들리고 구름이 예쁜 하루. 오랜만에 아내와 여름저녁 피크닉. 잘 살고 있는 기분.

April 14, 2024

4박 5일간의 알찬 일본 출장 및 여행. 아내와의 여행에 점점 쿵짝이 잘 맞아가는 느낌. 둘이라서 가능했던 얘기치않은 일들로 가득했던 시간이었다. 전시는 무사히 잘 오픈하였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식사를 하였다. 두시간 넘게 차로 달려 카레를 먹으러 다녀왔고 -사마 라고 이름 붙여도 될만큼 성스러운 후지산도 제법 가까이서 보고왔다. 묵었던 숙소의 주인내외분과 왁자한 타코야키 파티를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 아- 요캇다네- 타노시캇타데스

April 7, 2024

봄의 꽃을 찬미하는 온갖 노래와 시,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봄 꽃축제를 전하는 뉴스, 그런 것들을 보고 들어도 어릴 적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꽃다운 나이였기에, 스스로 피어나는 중이었기에 꽃이 피는 일에 무얼 그리 호들갑인가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 사진을 찍고, 꽃을 배경으로 자기 사진을 찍는 일은 뭔가 어른들의 일로만 여겨졌는데, 이제는 나도 꽃을 좋아한다. 여기저기 터지는 꽃망울을 보며 비로소 나도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켜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달까. 아내와 함께하기 시작하며 이제서야 삶의 리듬, 주기같은 것들이 잡혀가는 것 같다. 이제 뭔가 재미있는 일들이 막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일들을 어서 시작해야 할 것만같은 초조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런 시절이다. 아이고, 이제 시작되어 버렸네! 하고 읏챠! 하는 기합 소리를 내며 일어나야 할 것 같은 그런 계절이다.

February 8, 2024

파리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와보았지만, 크리스마스 장식이 다 꺼진 연말 연초 파리의 겨울은 유독 쓸쓸하고 어수선하고 허전한 기억뿐이었다. 오기 전부터 그런 울적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왔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날씨도 봄처럼 포근하고 거리 곳곳에 활기가 넘쳐났다. 아마도 아내와 함께여서 그렇게 느낀 것이기도 하겠지만, 관광객이 아니라 전시회의 주인공으로서 여러 관객의 축하와 환대를 받으며 보낸 터라 도시의 풍경조차 달라 보였던가 보다. 하루하루 전시회 오픈 준비를 하면서도 아내와 도시 구석구석을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이전에는 도무지 갈 마음이 생기지 않던 루브르, 오르세이 뮤지엄도 다녀오고, 그렇게도 해보고 싶었던 공원 달리기도 해보았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비주를 나누었던 다미엔과 마야, 임마누엘! 그리고 어릴적 나의 아이돌, 에어의 덩켈씨와의 저녁식사까지, 지난 십 일이 꿈같기만 하다. 아내도 파리를 좋아해서 다행이다. 어쩐지 십 년 전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늙어가는 내 모습이 허황된 꿈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처럼 느껴진다. À bientôt!

January 25, 2024

파리 곳곳을 거닐 때마다 홀로 머물 때의 파리, 낯선 누군가와의 파리, 다른 친한 사람과의 추억 속 파리가 자꾸 겹쳐서 떠오른다. 물론 혼자 있었던 파리가 가장 속이 편하였을지는 몰라도, 아내와 함께하는 파리의 기억 만큼 다채롭고 즐겁지는 못할 것이다. 오롯이 혼자서 모든 걸 다 경험하고 누리고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젋은 나로부터, 이제는 내가 잘 못하는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 일이 그저 즐거운 나-로 변해가는 듯 하다. 그래서 마음이 놓인다. 아무튼 배접할 줄 아는 아내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