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을 맞이하야 벼르던 채소키우기에 도전한다. 요즈음은 배란다텃밭이니 도시농부니 하는 말이 생길만큼 포장을 풀고 뚝딱 설명서를 보고 채소키우기에 도전할 수 있도록 구성품이 잘 되어있다. 어제 파종한 품종은 양상추, 로메인, 루꼴라, 청경채, 시금치와같은 잎채소류. 분에 자갈과 흙을 깔고 알맞은 크기의 구멍을 내고 2-3알의 씨앗을 심은 뒤 흙으로 덮어주고 축축하게 물로 흙을 적셔주었다.
서른다섯해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촌놈으로서 파종이라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흔히 먹는 채소류의 씨앗을 구경하는 것 또한 처음이었다. 은단처럼 번쩍번쩍 광이나는 선명한 초록빛의 청경채 씨앗은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져있어 그런지 자연의 것이 아닌 인공의, 미래에서 온 어떤 귀중한 광물같은 인상을 주었다. 한 알이라도 흘릴새라 두꺼운 손가락으로 콕 찍어 떨궈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제 씨앗의 발아는 적절한 양의 햇볕과 바람, 그리고 물에 달려있다.
이 외계에서 전해진 듯한 연두색 알갱이들은 도대체 무슨 수로 단단한 외피를 깨고 싹을 틔워야 할 시간을 아는 것인가? 저 스스로가 있는 곳이 진공의 플라스틱 통 안인지, 부드러운 흙 속인지 어떻게 아는 것인가? 완벽한 일조량과 적절한 수분의 양은 무슨 수로 재는 것인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외부 세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이 작은 알갱이, 유전체 속에 입력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오늘 오후 불교잡지, ‘불광'과의 인터뷰에서도 별안간 씨앗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책이나 말을 통해 전해진 지혜로운 말들도 적당한 마음의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잠자코 내재되어있다가, 그 생각이 발아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이 되어서야 발아하여 자라나 꽃피운다는 이야기.
아무튼 이 신묘한 물과 바람, 흙의 조화가 부디 나의 어여쁜 씨앗들을 잘 어르고 달래 튼튼한 떡잎을 피워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