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싸

구월에 있을 그룹전에 ‘기다림'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해야해서 요며칠 여러모로 궁리중이다. 만들다 만 조각을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여러가지 흥미로운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렇게 저렇게 만들면 제법 그럴싸- 하겠군.'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리고는 잠시 후, 앞선 생각에서 '이렇게 저렇게'라던가 그럴싸-하게'라는 말이 걸려 마음이 불쾌해졌다.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라는 것은, 어느 미술관에 설치된 영상 작품들에서 보았을 법한 그런 형식을 말한다. 그 형식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화면은 무엇에 초점을 맞추었는지 모르게 알쏭달쏭해야 하고, 테이크는 최대한 지루하고 길게하여 관객들을 빨리 떠나게 만들어야한다. 편집은 최대한 무엇을 말하고자하는지 모르게 난잡해야하고 너무 세련되어서도 안된다. 관객들은 무지몽매해서 그런 영상 앞에 앉았다가 티켓값이 아깝지 않도록, 그 어떤 감상이라도 가져보려고 알아서 무진 애를 쓸 것이다…

미술관에 걸린 영상들은 대게 그렇다. 장담하건데 아티스트는 분명 더 세련되고 친절하게,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테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지루하고, 무의미하고, 거칠게 만든 것일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 영상 작품도 그런 어떤 '예술적'으로 '그럴싸-'한 형식을 취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마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그 '그럴싸-'함이 예술을 더 저속한 무엇으로 만드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