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보험설계사?"

"응."

"그건 또 왜?"

"생각해봐, 우리가 평소에 누구에게서 그토록 우리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지를."

"점쟁이는 어때?"

"점쟁이가 눈감고 예언하는 그런것과는 다르지. 그들은 철저하게 내 의료기록과 가족들의 병력을 분석하고나서, 내가 암에 걸리거나 심장질환을 일으킬 확률을 산출해주거나 언제쯤 내가 돌아가시게될지를 이야기해주잖아. 그들의 죽음에 관한 통계자료와, 라이브러리는 아! 뭐랄까. 위대하지 않니- 우리는 아마 그 수치앞에서 숙연해질수밖에 없겠지. '아니! 그런 평균적 수치따위가 내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을 당신이 어떻게 할수있다는거요!' 라고 따져물을수도 있을만한 이야기인데 말이지, 사람들은 진지하게, 고분고분하게, 자신의 죽음과는 관련없는 이야기처럼 그 얘기를 듣잖아. 우리는 그 예고된 죽음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할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느끼게 될꺼야. '나'라는 존재의 종말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본적 있어?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상상할수있는 모든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상상할수 없는 그런 주제잖아.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미래에 관해 이야기할수 있는것중에서 가장 '미래'라는 개념에 가까운 무엇이라구. 물론, 우리의 보험설계사는 그런 망상이 끼어들 틈조차 주지않고 온갖보험상품에 떠들기 시작하겠지만. 그런데 혹시, 너는 종신보험에 대해서 상담받아본적 있어? 종신보험이라니! 내가 죽고난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걸까. 내가 죽고나서도 정말 이 세계는 존재할수 있는걸까?"

"글쎄. 보험설계사에게 물어보지그랬니. 죽음에 대해서라면, 영안실에서 일하는 염사원같은 직업이 더 실감나지 않을까."

"아. 그것도 괜찮겠군."

"못말리는 녀석. 하지만 난 그런 일은 싫어. 뭐랄까, 실컷 불안하게 만들고나서 월급통장에서 돈만 빼나가는 기분이랄까. 없어도 되는 필요를 만들어내서 소비하게 만들잖아. 난 뭐랄까 땀냄새나는 진짜 노동이 더 좋아."

"진짜 노동?'

"응. 예전에 잠깐 고철수집상에서 일을 해본적 있었는데 말야. 세상에 그보다 더 명쾌한 직업이 있을까 싶더라구. 고철수집상은 그저 거래처에서 고철을 싣고와서 고철매매상에다 그것을 팔면 끝이거든. 계산이라고 해봤자 짐을 실은 차의 중량에서 짐을 내린 차의 중량을 빼는 정도랄까. 그 중량에다가 고철가격을 곱하면 되는거야. 말하자면 뺄셈, 곱셈만 할줄알면, 누가 누구를 속이거나 속는 일 조차 일어나지 않지. 그런게 진짜 노동아닐까. 뭐랄까,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어낸다거나, 망치를 두드려서 구두를 만든다던가 하는 그런 땀냄새나는 일말야."

"왜? 그런일들이 더 고귀해보여서?"

"고귀하다기보다는 좀 더. 뭐랄까, 솔직해보이잖아."

"그렇다면 솔직한것이 고귀한거야?"

"음. 글쎄. 너에게 고귀한건 뭐지?"

"이를테면, 예술가나 철학자들. 아니, 소설가들."

"예술가가 고귀하다고 생각해? 난 예술가들을 믿지 않아. 예술산업이나 예술경영 이라는 말도 이해할수 없고 아트페어같은것도 이해할수 없어. 예술가들도 먹고 살아야하긴 하겠지만, 예술가들이 돈을 번다는건 오히려 보험설계사보다 더 많은 거짓말을 해야하는거 아닐까. 예를들어 어떤 예술가가, 캔버스위에 점을 몇개 찍어놓고 왜 네가 그것을 갖고싶어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설득시켜야 하잖아. 사용가치는 없다 하더라도, 교환가치가 있다는걸 인식시키기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 이름을 알려야할테고- 어쩌면 아이덴티티 컨설팅을 받거나, 마케팅전략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고, 아- 가만, 그런데 너 소설가가 되고싶은거구나?"

"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더이상 소설가가 되고싶지 않아.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되었어."

"하하. 어떻게!"

"음. 음."

"미안. 비웃은건 아니었어. 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일 줄 알았는데 '되었다-'라고 해서 놀랐어. 하지만, 어떻게? 뭔가를 쓴거야? 공모전에 당선됐어?!"

"그런게 아니라, 얼마전에 이런 결론을 내렸거든. 무엇인가가 된다라는 것은, 그냥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순간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고. 아니 이루어진다-도 아니지, '되다-' 라는 동사가 더 좋겠어. 그래. 다시. '무엇인가가 된다라는 것은, 그냥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그 순간, 바로 그것이 되는것이다.' 라고. 어쨌든 그래서, 그 결론을 내려버린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나는 소설가가 되었지. 어느날 문득 생각해봤는데, 내가 소설가가 '되기로했다 라던가 되고싶다' 라고만 말하면, 왠지 소설가는 죽어도 될 수 없을것 같더라고. 게다가 누군가에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소설가들의 평균연봉을 들먹이며 혀를 끌끌차거나, 은연중에 소설가는 니가 도저히 닿을수없는 경지라는 듯 선을 긋느라 바쁘거든. 그런데 그냥 '나는 소설가가 되었어-' 라고 말하면 뭐랄까. 듣는 사람은 그저 '그렇구나' 라고 대답할수밖에 없더라고. 뭐랄까,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까 통쾌한기분이랄까."

"음. 그런데 좀 시시하다. 뭔가 극적인 계기라도 있어야 하는거 아냐?"

"예를들면, 하루키처럼 야구장에서 2루타가 날아가는걸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던가 하는 그런 계기? 난 그런 거 믿지 않아. 소설가의 이미지라는거, 이를테면 싸구려 호텔방 같은데에 투숙하면서 여기저기 여행하듯 떠돌아다니며 이국정서를 느끼고, 아침에는 커피를 위속에 한가득 들이붓고 점심에는 산책을 하고 오후 늦게 명상하듯 잠을 청했다가 자정이 다 되었을때쯤 번쩍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는 뭐 그런 것들."

"그럼 네가 믿는 소설가의 이미지라는건 뭔데?"

"글쎄, 내 생각에 소설가란, 뭐랄까, 나무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어낸다거나, 망치를 두드려서 구두를 만든다던가 하는 그런 사람과 비슷할꺼야. 아! 하지만 왜이리 부끄러울까. 네 앞에서 고백하는것조차 부끄러워. 아무래도 내 생각이 틀렸나봐. 나 자신이 인정해버리면 그걸로 충분할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봐. 누구에게서 인정 받아야할까? 그게 열 명에게서 인정받아야 충분한지 스무 명에게서 인정받아야 충분한지 알수없잖아, 백명에게서 인정받 았다고해서 충분하다고 느끼는것도 우스운일이잖아. 아- 아무래도 유명한 소설을 써야만 하는걸까?"

"아니야. 내가 인정해줄께. 넌 지금부터 소설가다."

"그런데, 소설가가 되기엔 난 조금 통통한것 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