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져져있는 우리

"요즘은 어떠니?"

"어려워요."

"음. 어렵지."

"너무 어려워요. 특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던가' 하는일들은 말이죠. 정말이지 너무 어려운거에요.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에요. 저는 정말 더이상 욕심부리지 않거든요.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있는것도 아니고, 밤새도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출하기 위해 고민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아주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패턴을 갖고 싶은 것 뿐인데- 그게 너무 어려운거 있죠. 아- 사람들은 어떻게 그토록 어려운 일들을 매일매일 태연하게 성취할수 있는걸까요?"

"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는것은 '성취'해야 할 무엇은 아니지. 안자고 뭐하니?"

"아무것도 안해요."

"음?"

"아니요- 뭐랄까, 그 긴 불면의 시간동안에는 말이죠, '내가' 그 어떤것을 생각한다기 보다는, '그 어떤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차지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는 무책임하게 또다른 생각에게 나를 내주고는 도망가버리는 기분이에요. 뭐랄까, '내'가 '나'에대해서 생각하는것 같지만, 그 생각하는 '나'는 없는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아! 정말,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요.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코기토라는게 좀 낡은 것이긴 해. 그런데 안자고 무슨 생각을 해?"

"네? 코기토는 뭐죠? 뭐. 음. 글쎄요. 늘 똑같죠 뭐. 이를테면, 몇년전에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 집요하게 생각하고있기도 하고, 그 때 내 앞에 앉아있던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하고, 그사람 생김새는 어땠는지 성격은 어땠는지 바이오그라피같은걸 즉석에서 만들어내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또 그사람과 내가 앉아있던 그곳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 카페 주인의 생김새는 어땠는가 따위를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정말 누군가가 옆에서 그런 저를 보고있다면 깜짝 놀랄거에요. 얌전히 누워서 눈감고 잠들어있는줄 알았다가도, 어느순간 슬며시 웃기도 하고, 갑자기 소리내어 '아아!' 라고 탄식한다던가, '오오!' 하고 감탄하기도 하니까요."

"하하."

"아아! 그 모든 과정들이 너무 환멸스러운거 있죠! 정말 그렇게 누워서 세시간 네시간을 좀비처럼 누워있다보면- 간절한 기분이 되어서 이런 혼잣말을 하곤해요, 자- 난 여기 가만히 이렇게 얌전히 누워있을테니 제발 그 무엇이든 좋으니- 나를 차지하고 쉬게 해줄수 없겠니? 라고.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분명히 깨어있는데, 깨어있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무기력할수가 없어요. 더이상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결정할수 없을것 같은 그런 좌절같은걸 느낀다고나 할까요."

"담배한대 피울께. 칙! 너의 이야기를 들으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일리야'라는 말 들어봤니?"

"아니요?"

"임마누엘 레비나스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이야기인데. 내가 과연 잘 설명할수 있을까 모르겠다만, il y a (일리야) 라는 건 프랑스어로 '있다' 라는 개념이야. 독일어에는 es gibt 라는게 있지? 어쨌든 그사람이 처음에 상정하고 있는 상황은 이런거야. 상상속에서 네가 생각할수있는 모든것을 파괴해보라는거야. 이를테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이 테이블도 의자도 없고, 그렇게 하나씩 지워가다가 그 마지막에 남는게 무엇일것 같니?"

"글쎄요. 텅 빈 공간이 남을까요. 우주공간이 남을까요?"

"허허. 우주인같은녀석. 음. 사실 좀 사변적인 이야기이긴하다. 글쎄 나에게도 좀 난해하긴 하지만 그가 말하기를, 모든것이 무無로 돌아간 상태에 남아있는 것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단순히 '있다' 라는 사실 자체가 남는다는거야. 텅 빈 공간이 남는다기 보다는, '텅 빔'의 가득참인거지. 그 사람 표현을 빌자면 침묵만이 중얼거리고 있는 그런 상태라고도 하고, '무無가 무無를 만든다' 라고 말하기도 하고, 표현이 좋지? 하여간, 인칭이 없는 어떤 힘의 장-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

"아- 재밌네요!"

"자, 계속 들어봐. 결론은, 너는 결국 너에게로밖에 돌아올 수 없다는거야. 그게, 아까 말한 '일리야' 속에서 네가 너라는 자리로 존재하는 댓가라는 이야기이지. 말하자면,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너는, 너를 차지하는 대신 '계속해서 너 자신에게 얽메임'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는거야. 그게 바로 고독이고, 고독의 비극성은 바로 그 자기동일성의 포로로 갇혀있다는 인식 때문이라는거지. 우리는 밝음의 영역에서는, 즉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한 '향유'를 통해서, 혹은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통해서- 자기망각이라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면의 시간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거야. 우리는 '불면의 시간' 속에서, '일리야' 속에서 그 고독을 어렴풋 깨닫게 된다는거지. 바로 그게 존재방식자체이고, '고독'이라는 건 우리가 존재하기위해 어쩔수 없는 조건이라는식의 이야기이지.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하는일만으로도 매순간 굉장한 노력을 하고있는것인지도 몰라. 또 재미있는건 뭐냐면, 그나저나, 이해가 가니?"

"어려워요."

"그래 나도 어렵다. 재밌는것은 뭐냐면, 그사람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상적 삶'이라는것이 바로 그 '얽메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이라고 보고있다는 점이야. 그래서 바로 너처럼 일상적인 삶은 위한 노력을 열등하고 진부한 무엇으로 치부해버리는 모든 사상들을 혐오하지."

"아, 아녜요! 바로 그 '일상적인 삶'이 바로 지금 저에게 절실한 무엇이거든요!"

"하하. 욘석. 알았다. 어쨌든, 또 재미난건, 그 불면의 시간, 그 공포스러운 익명적인 존재 속에서,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와서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고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그 얽메임의 순간이 바로 '현재'이고 홀로서기이고, 출발이라는거야. 거기에서부터 그는 시간개념을 설명하기 시작하지- 타자는 미래-라고 하기도 하고, 하하 그만해야겠다."

"뭔가 색다르네요. 왠지 감동적이기도 하고."

"내가 괜한 얘기를해서 '불면'이라는걸 미화 시켜놓은건 아닌가 모르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해 준 이야기였어."

"하하. 그러게요 덕분에 오늘밤엔 불면의 시간을 좀 더 고상하게 보낼수 있을지도 몰라요. 저도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께요. 며칠전에 꿈을 꿨는데요. 아니. 사실 그건 꿈이라고 할수도 없는 그런 순간이었어요. 뭐랄까- 원래는 꿈이 끝나는 지점과 현실이 시작되는 지점이 정확히 일치해야만 하는데, 뭔가 그 시스템이 순간적으로 방심해서 그랬는지 그날은 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깨어버린거에요! 보통 '가위눌린다' 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어요. 뭐랄까- 그 상태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아! 내가 아직 꿈속에 있구나-' 하는 자각이 있고나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어떤생각?"

"'아! 이 상태를 내가 그냥 인정해버리면, 그냥 이 세계에 그대로 머물수 있게되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바로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깨어나버렸어요. 제 생각에는 그게 어떤 원초적인 불안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뭐랄까, 일반적으로 '영원' 이라는것은 뭔가 '죽음'의 반대편에서 행복이고, 평화인것처럼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생각이 들더라구요. 영원히 지속된다라는 것 자체가 불안이고 공포가 아닐까 하고요. 계속 들어보세요.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서도, 그 편에, 그러니까 꿈속에 과연 내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그렇다고 현실에 있다는 그 사실도 그다지 믿음직하지는 않더라구요. 아아- 장자의 호접몽과같은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니에요. 뭐랄까,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뭔가가 되고싶다'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때에도, 뭔가 그와 비슷한 두려움이 있는것 같았어요."

"예를들면?"

"예를들어, 제가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그 경계가 어디있느냐는거죠- 소설가가 되기 전 단계와 소설가가 되고난 다음 단계를 구분하는게 도데체 뭐냐는 생각인거죠. 그냥 어쩌면 '나는 바로 지금 이순간부터 소설가다' 라고 생각하면, 그냥 그렇게 되는건데, 단지 나는 그런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는것이 두려워서 계속해서 연기하고만 있는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마치 꿈 속에서 먼저 깨어난 의식이 '아 이건 꿈이구나, 나는 꿈속에 있구나' 라고 인정하기 두려운것처럼 말이죠."

"그래, 네가 그렇게 인정하고나서 만족한다면 이미 너는 소설가일테고 그것으로 아무 문제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것으로 네가 만족할 수 있겠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넌 정말 성공할꺼야. 하지만 '등단'이라는 좁은 문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 입구를 무시한 채 활동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 네가 이미 작품활동을 하고있는 중견 소설작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검증되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를 소설가로 인정하고 싶겠니?"

"그렇긴 해요."

"하하. 그렇게 쉽게 수긍해버리다니. 욘석. 나도 네 생각에 동의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정한다는건 어려운 일이지. 네가 만약 너 스스로를 소설가라고 인정했다면 된거지 뭐. 그저 소설을 쓰기만 하면 되잖아!"

"그러게요, 간단해서 화가나요."

"뭐. 어쩌겠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쓰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