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 무덤가에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도시의 고양이들처럼 매일 털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사람을 홀리거나 하는 그런 외모가 아닌, 한마리 야수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주로 도로변 덤불이나 무덤가 주변에서 목격되는 것으로 보아 산에 사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이 산고양이에 대해 무심했지만 나에게는 그 고양이만큼 호기심을 잡아 끄는 대상이 없었다. 집 창문 너머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고 그 앞에 앉아서 바라보면 고양이가 출몰하는 무덤이 정면으로 보여, 누구보다도 자주 고양이를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양이는 무덤가에 나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헐벗은 겨울 산에 점박이 무늬 흰 고양이의 모습은 눈에 더 잘 띄었다. 아마도 일부러 볕이 가장 따뜻한 시간을 골라 나온 것일 게다. 도시의 고양이들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걷는 것과는 달리, 이 산고양이는 몸이 더렵혀지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고도 확신에 찬 듯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어깨 근육들이 울룩불룩 불거져 나왔다. 겨울에 길 고양이들은 따뜻한 지하실이나 자동차 보닛 밑에 숨어든다는데, 보기만 해도 살벌한 겨울 산을 보금자리로 택한 이유는 무얼까.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는 것일까. 까치들이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살거나, 꿩들이 돌아다니는 건 봤지만 고양이는 산에서 무엇을 잡아먹고 사는 지 알 길이 없었다. 겨울이면 산 위로 황조롱이들이 유유히 날아다니곤 하는 걸 보면, 풀 숲 사이에 고양이가 잡을 수 있을만한 쥐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산고양이에 대해 동네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흥미를 보이는 듯 하다가도 이내 엉뚱한 대화로 이어졌다. 마치 ‘식사 하셨어요?’라는 말이 정말 밥을 먹었냐는 것이 궁금해서 한 질문이라기보다, 그저 말을 트기 위한 인사에 불과한 것처럼, 고양이에 대한 내 질문은 언제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 고양이는 무얼 먹고 살까요?”
“그러게요 날씨도 추운데… 그나저나 난방 텐트라고 들어보셨어요? 한 번 써보세요. 엄청 따뜻해서 난방비를 엄청 아끼고 있답니다.”
또 이런 대화도 있었다.
“그런데 고양이가 정말 쥐를 잡아 먹나요?”
“글쎄요, 요즘에도 쥐가 있나요? 그 뉴스 보셨어요? 얼마 전에 프랑스 신경과학자들이 쥐의 뇌를 해킹하는 데 성공했다더군요. 우울한 기억을 조작해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어 놓았다나. 참, 신기하죠?”
각자 서로 하고싶은 말만 하는 데도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저 말을 쏟아낼 대상을 필요로 하는게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점심 무렵, 산 아래로 차가 한 대 서더니 한 남자가 빗자루와 낫을 들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곧바로 묘지로 올라가 주변의 잡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겨울 초입이라 잡목이 자라날 만한 환경이 아닌데도 벌초라니, 그렇다고 묘지의 친지인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작업복을 차려입은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봉분 주변의 나무들을 정리하고 잔가지들을 다듬었다. 그리고 묘지에서부터 차도까지 이어진 작은 오솔길에 떨어진 잎들을 쓸어 내느라 한두 시간을 더 그 곳에 머물렀다. 일을 마치고 간단히 제사라도 올리고 갈 줄 알았는데, 장비를 싣고는 곧장 차를 몰고 가버렸다. 의문의 남자가 떠난 뒤 삼십분 쯤 지나자 다시 고양이가 나타났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멀리서 보아도 산뜻하게 보이는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올라가며 가끔씩 멈춰 서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마치 남자가 일을 제대로 끝냈는지 검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천히 무덤까지 올라가더니 마른 잔디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얼마 남지 않은 볕을 쬐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양이를 쫓아가 보기로 했다. 왠지 저 고양이는 사람을 피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괜히 다가갔다가 위협을 가하는 것 처럼 보여 다시는 묘지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최대한 예를 갖추어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항상 멀리서 보기만 했지 가까이에서 보니 꽤나 가파른 길이었다. 중턱에서 고개를 들어 묘지쪽을 바라보니 고양이가 내 동태를 살피며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만큼 왔는데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해는 이미 기울어 나보다 먼저 산을 넘을 기세였다. 묘지에 올라서자 고양이는 그제서야 놀라 재빠르게 비석 뒤로 숨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앞집에 사는 청년 아닌가?”
“예, 맞습니다. 알아보시는군요?”
“자네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네. 그런데 무슨 볼일인가? 여기까지 올라오다니.”
“아, 그게 저는…….”
“내가 왜 도시를 떠나 산에 사는지, 왜 여기 묘지 위에 앉아 있는지 궁금할테지.”
나는 할 말을 잃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네는 아마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네만, 고양이는 그렇게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네.”
그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하늘 위로 날아드는 기러기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린 정신을 공유한다네.”
그는 갑자기 날아든 귀뚜라미에 정신이 팔려 잠시 말을 끊었다.
“우리 고양이들은 하나의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네. 자네들처럼 스스로를 개별자로 인식하는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자네들도 원래는 우리처럼 단일한 정신을 가졌었지.”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왜 홀로 산에 나와 살고 계신거죠?”
“자네는 아직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군.”
“나는 하나의 독립된 묘가 아니란 말일세. 나는 자네가 살고있는 건물 지하에 살고 있기도 하고, 노란 털을 갖고 있기도 하고,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도 하고 있을 뿐, 모두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네. 공간 속에 산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들이 말하는 시간 역시 우리에겐 무의미 하다네. 하여 자네들 시간으로 약 십만 년 전 쯤 최초의 조상들로부터 얼마 전 바로 저 아래 도로를 건너다 불행하게도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까지 모두의 기억이 모두에게 공유되어 있다는 말일세.”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차에 치인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잊어버렸는데, 이미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그렇다면, 제가 만약 고양이 한 마리, 아니 한 분을 모셔다 기르면서 등을 쓰다듬는다면, 선생님께서도 즉각 그 느낌을 느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나는 내가 고양이에게 고양이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고 거의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겨울 산이라 추울 법도 한데 그리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감각은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져 버린다네. 자네들은 감각적인 것들을 좇아 사는 동물이라지? 우리는 오래 전에 감각의 무상성을 깨닫고는 더이상 감각이 주는 쾌락이나 고통을 믿지 않게 되었다네. 미안한 말이네만, 우리는 자네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애착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네. 먹을 것이 궁한 요즈음엔 자네들을 유인해 식량을 얻어내기도 하지만, 그 이외에는 거의 인간들의 일에 관심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렇다면 고양이들… 아니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참으로 인간다운 질문이 아닐 수 없구만. 우리에게 삶의 이유 따위는 없다네. 그저 일어나, 탈 나지 않도록 음식을 찾아 먹고 몸을 가다듬는 것이라네. 날씨가 좋으면 이렇게 양지바른 곳에 나와 세상의 온갖 주기와 흐름을 관조하며 명상에 빠진다네. 시간을 초월하여 이미 깨우친 성묘들의 가르침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하지. 부득이 떨어져 살고 있는 몸들이 제각각 느낀 것들을 종합하여 묘류 猫類 전체가 공유할 만한 의미있는 성찰을 이끌어 내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네. 최근에는 인류가 저지른 과오들을 그저 방관할 수만은 없기에 인간들 사이에 최대한 스며들어 그들을 이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네. 내가 이 곳을 찾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던가? 자네는?”
“아, 네.”
“자네가 알고 있는 묘 墓 는 사실 조상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묘 猫 의 신에게 바치는 신전에 가깝네. 자네들의 먼 조상, 이집트인들이 그에 가장 열성적이었지. 적어도 그들은 내세에서라도 우리 고양이들의 영전 靈殿 에 합류하는 것이 몸의 세계를 초월하여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던 게지. 고대의 인간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현명했다네. 아무튼, 나는 이 묘의 주인일세. 운좋게도 나를 모시는 인간들을 만나 매일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지. 어제 다녀간 녀석이 바로 그 친구지. 그나저나, 자네 돌아가보아야 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갑자기 찌뿌둥한 기분이 들어 몸을 둥글게 말아 기지개를 켰다. 앞 다리를 쫙 뻗어 온 몸의 근육들을 한껏 긴장하게 만들었다가 조금씩 힘을 풀었다. 한차례 전율이 꼬리 끝까지 퍼지다가 이내 나른하게 온 몸의 근육들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이야옹…”
하고 인사를 한 뒤, 나는 가뿐해진 몸을 일으켜 사뿐사뿐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다. 갑자기 덤불 속에서 재빠르게 몸을 숨기는 쥐가 보였다.
오늘 저녁은 이것으로!
<자정작용自淨作用 - 봄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