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舌話

남자가 자신의 혀를 자른다. 혀가 잘려나갔을 때에 어떤 고통이 뒤따르는 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기에, 남자는 그 아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잠시 이상한 표정만을 지어보였다. 설령 그 느낌을 안다고 해도 이제 짐승같은 몸부림과 울부짖음 이외에는 그 아픔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혀를 깨물면 죽는다는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다행히도 자르기 직전에 생각해 내었다. 그러니,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은 서해 어딘가의 갯벌. 이제 다 기울어 가는 겨울 햇살 아래로 낮게 깔린 바다가 반짝거린다. 반짝이는 모든 것들의 수 만큼의 고통이 그의 입 안을 마비시킨다. 떨어져 나간 혀 역시 고통을 느끼고 있을까. 혀의 통각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그에게 그 고통을 전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알아줄 주인이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체념한다. 어쩌면 혀의 고통은 주체로부터의 이탈로 인한 심리적인 무엇일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혀의 고통을 상상하고 미안함을 느낄만큼의 여력이 없어 그는 그저 혀를 바라만 볼 뿐이다. 떨어져 나간 혀 조각이 진흙 속에서 붉게 빛나다가 이내 핏기를 잃고 거무튀튀한 흙색으로 변해간다. ‘죽으면 다 흙빛이 되는구나.’하고 남자는 생각한다. 혀는 진흙 속에서 말이 없다. 작은 게 한마리가 눈치를 살피더니 혀조각 주변을 맴돌다가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게에게는 혀가 필요 없을테지. 마치 혀 끝에서 심장이 뛰고 있는 것처럼 고동소리에 맞춰 욱신욱신 입 전체가 아려왔다.

남자는 자신의 혀가 초래했던 끔찍한 일들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자신의 혀가 초래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영영 입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혈이 되지 않아 입 밖으로 질질 흘러내리는 피를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의 주변엔 아무도 없다. 그는 태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피범벅이 된 채로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눈이 부신 데다가 입 안의 핏물을 어찌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머금고 있다보니 어찌보면 웃는 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이상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혀의 고통에 비하면 한겨울 바다 바람이 전해오는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큰 고통에 대한 숙연한 마음으로, 다른 감각 기관들은 저 자신의 고통을 겸손하게 낮춘 듯 하다. 아니면, 이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태에 뇌가 놀라 혀 아래로의 감각들엔 신경 쓸 겨를이 없는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아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혀가 잘려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했더랬다. 죽음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예상되면서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체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것처럼, 그는 이것을 예상했다고도, 또 예상치 않았다고도 말해야 정확한 얘기가 될 것이다. 남자의 정신이 자신의 예상을 관철시키고, 몸은 그에 굴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언젠가 몸이 정신에 반격을 가할 날도 있을 것이다.

그가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몸에게 변명한다. 사람들은, ‘그래, 그 사람… 자기 혀를 잘랐다지?’ 하며 그의 과단성을 칭찬해 줄 것이다. 혀로 저지른 잘못에 대해 혀로 용서를 구한다는 명쾌한 방식도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