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수집가

그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늘 작은 시험관을 준비해 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그 안은 텅 비어있었다. 매번 빈 시험관을 가지고 가서 빈 시험관을 들고 왔다. 시험관에는 라벨을 붙이고 특수하게 제작한 케이스에 넣어 잘 보관했다. 가끔 그 시험관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절대로 열어보는 일은 없었다. 중지 손가락만한 길이의 시험관에 붙어있는 라벨에는 장소와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이를테면, ‘비엔나의 쇤브룬궁 정원 – 2011년 5월 30일’, ‘프라하의 낡은 시내버스 – 2012년 11월 23일’, ‘파리 루브르 지하철역 승강장 – 2014년 10월 15일’과 같은 식이다.

그는 공기를 수집했다. 공기의 성분을 연구하는 화학자라던가 대기오염 표본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과학자여서가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그와는 관계가 아주 먼, 소설가였다. 그는 공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고대로부터 우주를 구성하는 주요 원소로 항상 손에 꼽히면서도 유일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그는 가장 좋아했다. 모든 존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적인 것이면서도 마치 아무 데도 없는 것처럼 어디에나 있는 그런 공기의 무상함을 닮고 싶어했고, 꽉 들어차 있으면서도 세상 무엇보다도 가벼운, 다른 무엇으로 늘 변하는 공기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했다. 그는 공기같은 글을 쓰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공기를 보며 그는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마치 화가가 백색의 캔버스를 들여다보며 무한의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것과 같았다. 당시의 시야에 갇혀버린 고정된 이미지나 생각만을 전해줄 뿐인 사진이나 짧은 글과는 달리, 공기는 마치 여행지에 도착한 이후부터 경험한 모든 공간과 시간의 기억을 함축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전해주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여행 중에 공기를 들이마시는 데에 더 열중했다. 그리고 그 맛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사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수집한 공기들이라고 해서 그 성분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도 잘 안다. 그는 공기에 맛을 화학 성분들의 조합으로 여기거나 냄새의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공기에 ‘질감’이 있다고 여겼다.

공기의 질감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언어는 처음의 그 풍부한 느낌을 더 위축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애초에 보이지 않고 맛볼수 없는 것일 바에, 세련된 언어로 묘사해두기 보다 퇴행적인 촉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촉각이라고 해서 공기가 바람에 의해 살결에 전해지는 느낌을 기억하려한다는 것은 아니다. 공기의 질감을 느끼는 데에는 그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그에게 일종의 조각과 같았다. 시각, 청각, 미각, 등 모든 감각들을 엷게 층을 만들어 포개어 놓고 시간과 공간 축에 따라 더하거나 깎아내어 입체적인 하나의 덩어리로서 공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는 공기가 담긴 시험관을 보며 그가 조각한 감각의 덩어리를 눈으로 만지고 추억하는 것이다.

그는 오늘 몇 해 전 갔었던 루마니아의 작은 한 시골마을에서 수집한 공기를 집어 들었다. 잘 닦아 놓아 한없이 투명하기만 한 시험관 속의 빈 공간 들여다본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가장 먼저 너른 들판으로부터 불어 온 공기 속에 담겨있던 짙은 풀 냄새가 났다. 밭에서 온 것인지 비료 냄새도 조금 섞여 있었고 벼룩시장 먹자골목에서 굽는 돼지고기 냄새도 풍겨왔다. 일차선 도로 갓길을 앞서서 걷고 있던 드라고쉬 라는 친구의 자켓에서 풍겨나오는 섬유 유연제 향도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다. 골동품 시장에서 맡아보았던 온갖 물건들의 냄새들을 떠올리느라 코가 얼얼해 질 무렵, 그는 이번엔 소리의 겹을 들추어본다. 처음엔 구체적인 단어들이 아닌 노래와도 같은 억양들이 들려온다. 만났던 사람마다 각기 다른 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의미를 가진 언어가 되어 들려왔다. 군중 속에서 나를 놓치고 만 친구가 나를 한참 찾았다며 해준 말, 황동으로 된 술잔을 집어 들고는 트로피처럼 생겼지 않냐며 묻던 말, 바로미터를 보고있는 나에게 루마니아어로 가격을 알려주던 말, 말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말이 떠오르면 말하는 사람의 모습과 표정, 그가 서 있는 곳의 풍경들이 뒤이어 떠올랐다. 이러한 감각들은 시 · 공간적으로 뒤섞인 꿈처럼 한꺼번에 다가오지만, 일단 모든 감각들을 깨워 놓으면 순서에 맞게 재구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루마니아의 공기가 담겨있는 시험관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가끔씩 얼굴을 찡긋 거리기도 하고, 뭔가 소리없이 읊조리기도 했는데, 하루 종일이고 그렇게 수집한 공기를 바라보고 있을 수 있을 것처럼 행복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