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지금처럼 위대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꼽는다.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보육원에 맡겨지기까지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떠돌아 다녀야 했던 경험이 그로 하여금 세상에 대해 그토록 냉철한 시각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글을 쓸 때가 많다. 어떤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경험한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그의 독특한 시각이 단지 어린 시절의 불우한 경험 때문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가 나타나면, 일단 겁을 집어먹고 그 무언가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에 그 요인이 있을거라고 단정 지어버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추측만을 할 수 있을테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런 독창적 문학 세계를 갖게 된 건 그의 이마에 난 ‘뿔’ 때문이다.
단순한 혹이 아닌 그보다 더 크고 뾰족한 무언가가 그의 이마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보육원에 맡겨져 길러지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이다. 아이들은 머리에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길이의 뿔을 달고 있는 그를 보며 악마의 자식이 틀림없다며 놀려댔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구성된 보육 교사들 마저도 아이들이나 하는 이 저주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어린 나이의 그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를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차별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많은 경우 나쁜 길로 들어서기 쉬운데, 이 씩씩한 아이는 이마에 난 뿔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한 보육 교사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제 이마에 난 건 뿔이 아니에요. 제 머리가 하늘에 난 구멍을 향해 조금 빠져나가려다 만 자국인걸요. 스스로 어떻게 이 딱딱한 머리뼈를 뚫고 이런 혹을 만들 수 있겠어요. 제 머리 위 하늘에 작은 구멍이 난 거예요. 저는 제 혹이 계속해서 하늘로 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하늘에 정말 구멍이 뚫리면 까만 밤이 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의 소설가에게 세상은 이미 뒤집혀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볼록 튀어나온 양각의 세계를 본다면, 그는 그 반대편 쪽으로 깊이 새겨진 음의 세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마에 난 뿔이 얼마든지 전복될 수 있는 세계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전의 한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그가 쓴 문장들을 살펴보면 도처에서 그러한 전복된 세계의 징후들을 볼 수 있다. 그에게 산은 하늘을 향해 솟아나와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의 뿔처럼 하늘 쪽으로 쏟아지듯 움푹 패인 공간이며, 그에게 깊은 골짜기는 하늘에서 땅을 향해 솟아올라있는 거대한 산맥이자 솟아오른 뿔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뒤집어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그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더욱 확장되어 이제는 단순히 객체와 객체 사이의 전복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전복된 사고로 전개되어 나타난다. 하여 그의 글을 읽을 때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가 무언가를 바라보면, 바라보는 그 대상 쪽으로 중심이 한 번 이동하고 그 중심은 또 한 번 다른 객체와 자리를 뒤바꾼다. 그렇다고 그가 바라보는 모든 대상에 대하여 주체를 던지고 뒤바꾸는 건 아니기 때문에 또 한번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일전에 그의 문학 세계를 일컬어 ‘뿔의 문학’이라고 한 적이 있다. 줄여서 ‘뿔‐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