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이탈리아 광장에서 만난다. 사실 우리는 이탈리아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그저 유럽 어디선가 보았던 회랑형 건물이 서 있는 이곳을 이탈리아 광장이라고 부르기로 했을 뿐이다. 광장 너머에는 커다란 탑이 서 있다. 역시 이탈리아 어딘가에 있는 기울어진 탑을 닮았다. ‘이탈리아적 的 무엇’에 대한 빈약한 상상력이 빚어낸 듯한 이 조악한 풍경을 나는 좋아한다.
광장 한쪽에 서 있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만든 하얀 건물은 오래된 학교의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반대편에도 쌍둥이처럼 닮은 건물이 서 있었는데, 이탈리아산 고급 대리석 석재들을 보관해 놓는 창고 같았다. 물론 실제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주 보고 있는 건물의 일 층에는 높은 회랑형 복도가 나 있었고 네 개의 기둥이 아치 형태로 천정을 떠받들고 있었다. 광장의 한가운데에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어느 신의 와상 臥像 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동상의 그림자 끝이 회랑형 건물의 다섯 번째 기둥을 가리키는 시각에 만나기로 하였다. 그 시각은 두 시일 때도 있었고 다섯 시일 때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그날 이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대한 동상의 그림자의 길이를 늘 확인해 보아야 했다. 오늘은 강렬한 태양 빛 때문에 그림자가 더욱 짙어 보였다.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의 그림자가 기숙사 건물의 여섯 번 째 회랑 안으로 진입할 때쯤 나는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 바닥은 그냥 누런 황토로 다져져 있을 뿐이어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먼지가 심하게 일었다. 파란 하늘이 먼지와 뒤섞여 뿌연 연둣빛을 띠었다.
그동안의 우리는 약속을 해 놓고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로 이탈리아 광장엘 가곤 했다. 언제나 광장 어디쯤에서 만나자고 할 수 있었을 뿐, 특정한 장소를 정확히 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풍경은 우리의 이성이 그 특유의 정합성을 발휘하기 이전, 우리의 무의식 때문에 늘 조금씩 틀어졌다. ‘이탈리아 광장’이라는 이 형이상학적인 공간은,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좌표일 뿐이었다. 엉뚱한 환상을 빚어내는 무의식의 방해 때문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초래한 혼돈이 더 많았다. 이를테면 이탈리아풍의 이 층 건물을 광장 한쪽에 세워두고 그 건물 왼쪽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나서 보니, 각자 다른 방향에 건물을 세워놓아 두 채가 되어버렸다거나, 광장 가운데에 동상 앞에서 보자고 해놓고 서로 완전히 다른 모양의 동상을 세워놓는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쌍둥이 건물을 마주 세워놓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자, 사방을 분간해 줄 또 다른 기준점이 필요했기에 우리는 거대한 탑을 광장 바깥에 짓기로 하였으나, 그 탑의 모양도 서로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물을 설정하기로 하였다. 자동차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니, 수증기를 뿜어내며 달려가는 증기기관차가 제격이라 생각했다. 이제 우리는 증기 기관차를 기준으로 삼아 방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어제 우리는 잠들기 전에 확신에 차서 이런 편지를 주고받았다.
“내일 이탈리아 광장에서 만납시다.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어떤 동상의 그림자가 증기 기관차가 달려가는 방향에 서 있는 회랑형 건물의 다섯 번째, 혹은 여덟 번째 기둥에 맞닿았을 때, 광장에서 거대한 탑에 가까운 쪽에 서 계십시오. 꿈속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