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이우판 작가님께

친애하는 이우판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파주에 사는 김대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고요. 언제 한 번 선생님께 제 작품을 소개해 드릴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언론 인터뷰 사진을 통해서 밖에 뵐 수 없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한 모습이셔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계신 곳의 날씨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변덕스러운 봄 날씨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 제가 대학교 삼 학년 학생이었을 때입니다. 한국 미술사 수업 시간에 여러 한국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선생님을 택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의 인터뷰와 작품들을 찾아보고 출간하신 책을 읽어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대단한 작가가 있구나-하며 선생님의 작품과 선생님의 미학에 흠뻑 빠졌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작업을 계속해나가며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싶어 했던 작가 지망생으로서, 세계적인 갤러리, 작가들과 교류하며 자기 미술 세계를 펼쳐나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큰 본보기가 되어주셨습니다. 때마침 당시 사간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선생님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선생님을 한 번 만나 뵐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전시장을 자주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책에서 읽기로는, 철판과 돌의 조합으로 작업하시는 <관계항> 연작을 작업하실 때, 그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돌’을 직접 찾아 작업에 사용하신다고 들었는데, 그 전시의 작품 설치는 직접 지휘하지 않으셨다고 들어서 조금 실망했던 기억도 납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선생님의 미술관 건립 문제를 두고 시끄러운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군요. 제가 존경했던 선생님과 관련된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된 미술관이 모국에 지어진다는 것은, 살아있는 작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일인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기에 놀랐습니다. 알고보니 선생님은 미술관 건립을 기대하거나 요청한 적도 없으셨더군요. 선생님의 유명세를 빌어 득을 보려는 지자체와 선생님의 비싼 작품값을 시기하는 작가들이 정체성 운운하며 빚어진 일이라 여겼습니다. 거의 외국 작가라 해도 무방한 백남준 작가에 대해서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작가라 추켜 세우며 미술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또 반대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에 비교해 보자면 우리나라 ‘미술계’ 라는 곳이 얼마나 꽉 막혀있는지, 작가의 작품보다 ‘유명세’에 좌우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로서 어떤 국가적 정체성에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선생님께서는 한국적인 것, 동양적인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깊이 있게 연구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동양철학과 동양의 미를 서구 미술계에 선생님처럼 직접적이고도 주도적으로 소개한 작가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몇 년 전 한 언론과 하신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간, 마음고생이 심하셨겠구나 싶었습니다. 잘 해결되어 선생님 이름으로 된 미술관이 축복 속에 개관하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편지를 쓰다 보니 얘기가 길어진 듯합니다. 제가 선생님께 편지를 쓰고자 한 이유는, 바로 ‘돌’때문입니다. 얼마 전 산책길에 무심코 마주친 ‘돌’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돌은 꼭, 선생님의 구겐하임 전시를 위해 작업하셨던 <관계항-지각과 현상 B> 속에 나오는 돌과 꼭 닮아 있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선생님이 유리판 위에 올려놓으셨던 그 돌 말입니다. 돌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청년, 나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돌이라네.”라고 말입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돌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아무튼 산책길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 돌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돌의 생김새를 살피는데 바닥에서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나더군요. 돌 주변의 흙먼지를 걷어보니 그 아래에는 깨진 유리 한 장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유리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 영 불편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의 물성과는 정 반대에 있는 또 다른 존재를 파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느낌은 선생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것이기에, 저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우판 선생님의 작품이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아무래도 지나친 우연이 아닐까 하여, 주변을 더 살펴보았습니다만, 유리나 철판과의 관계 항에 놓여있는 돌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선생님의 작품을 보존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인적이 드문 시각을 틈타 그 무거운 바위를 들고 우리집 옥상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바닥에 깔렸던 유리조각에는 먼저 테이핑을 하여, 깨져있는 조각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였으며 넓고 얇은 석판을 유리 아래로 밀어 넣어 깨진 상태 그대로 이동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옥상으로 올려놓고 원래 돌이 있던 위치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만큼이나 엄숙하고 진지하게 처리되었습니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만족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선생님께서 잃어버린 작품들이 더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파주 인근의 산을 몇 년 째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선생님의 더 많은 <관계항> 연작을 찾아내었습니다! 제가 찾아낸 선생님의 새로운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하기 전에, 선생님께 먼저 연락을 드리는 것이 도리라 여겨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제가 주워온 돌과 나무, 철판을 전시하고 선생님의 이름을 빌어 미술관을 짓고자 합니다. 미술관 이름은 <파주 이우판의 말하는 돌 미술관>입니다. 작품의 판매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제가 주워온 돌이니, 판매 수익은 모두 저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제가 산과 들을 누비며, 선생님의 작품을 발견하며 느꼈던 흥분과 환희를 선생님은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럼, 선생님의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파주에서, 김대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