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현 작가님께

안녕하십니까, 김대현 작가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답신이 늦어지게 된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보는 일이 드물기도 하거니와, 일본, 한국, 프랑스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는 터라, 한국의 작업실에 도착해 있는 편지들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파리 날씨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매우 변덕스러웠답니다. 삼월 초에는 눈이 내리기도 했지요. 파리를 떠나오던 날이 되어서야 겉옷을 벗고 다녀도 될 만큼 따뜻한 날씨가 되었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신록의 빛깔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더군요. 나지막한 푸른 언덕으로 둘러싸인 프랑스의 풍경도 좋아합니다만, 저는 역시 한국의 산을 좋아합니다. 너무 낮거나 밋밋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인간을 한없이 위축되게 만드는 장대한 느낌도 아니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공항에서 작업실로 가는 길에 보았던 산들이 바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포근하게 우리를 안아주는 어머니 같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집을 떠받치고 서 있는 든든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 같았습니다. 김대현 작가님도 아마 그렇게 든든하고 포근한 자연을 늘 곁에 두고 생활하고 계시리라, 보내주신 편지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산책길에 저의 작품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돌 아래 유리판이 있었다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지각과 현상 B 작품에 사용했던 돌을 닮았다 하시니, 실제로 보고 싶더군요. 산에서 주워온 돌로 전시관을 꾸며 판매하시겠다는 말씀은, 안 그래도 최근 몇 년 간, 위작 논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 늙은 작가를 놀리려는 짓궂은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작가님이 발견하셨다는 그 돌이 제 작품이 아닌 것은 백 퍼센트 확실해 보이는군요. 돌 아래에 깨진 유리가 깔려있다는 점이 신기합니다만, 아마도 그것 역시 우연의 조화이고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일 것입니다. 사실 저의 관계항 연작 역시 자연의 산물일 뿐이지요. 저는 그것들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고 서로 만나게 하는 우연을 촉발하는 매개일 뿐입니다…

실제로 돌을 팔아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하시는 행위라면, 못된 장난은 그만두시는 편이 좋겠다고 조언해드리고 싶습니다만, 돌을 집까지 들고 올 정도의 정성이라면, 작가님께서도 장난삼아 하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시에 쓸 돌을 찾기 위해 산을 헤매고 다닐 때 느꼈던 것들을 조금은 이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이 말을 하더라’는 말씀도, 그만큼 망아忘我의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작가님께서 돌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또 물성이 서로 다른 사물들을 관계맺게 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잊고, 자연이 뿜어내는 생동하는 氣의 중재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하셨다면, 그 작업을 계속 진행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돌과 철판이 인공물 대 자연물이라는 차이를 갖는 듯 보이지만 함께 대면시켜 놓고 보면, 애초에 서로 다를 바 없는 자연의 산물인 것처럼, 저 역시 김대현 작가님과 다를 바 없는 자연의 산물이지요. 그저 우리를 다른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고 있기에 다르게 보이는 것뿐이지요. 저의 작업에 대해 공부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고정성과 가변성, 물질성과 비물질성, 작용과 반작용, 등 같음과 다름이 저의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제가 해 왔던 것과 같은 작업을 하시겠다면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이미 그렇게 하고 계신듯합니다만… 과연 그 안에서 또 어떤 차이가 생겨날지,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실지가 더 궁금하군요.

한국에 와서도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이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일본의 작업실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여유가 된다면 시끄러운 일들로부터 벗어나 김대현 작가님이 모아 놓았다는 돌을 구경하러 가보고 싶기도 하군요. 작가님께서도 일본 카마쿠라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같이 차나 한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었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16년 4월 22일

이우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