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3일 15시 45분
무교동 스타벅스, SFC 건물을 바라보는 창가쪽, 왼쪽에서 다섯번째 테이블.
왠지 이런 말투로 시작해야 할 분위기로, 뒷자리에 앉은 연인의 대화 엿듣기.다소 뚱뚱한 체격으로 서른 즈음 되보이는 남자는 잘 정돈된 색상의 스트라이프 무늬의 니트를 입고서 한쪽 다리를 비죽 내민채 잔뜩 편한 자세로 앉아 있고, 그 반대편의 여자는(사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두운 카키색 롱코트를 입은채 가슴 안쪽으로 팔장을 꼭 낀채로 테이블에 상채를 기댄 채 남자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
줄무늬가 비죽 내민 뚱뚱한 다리를 건들거리며 말한다.
"난 혼자다니는게 더 편하던데-"
카키색코트가 잔뜩 얼굴을 찌푸려 동정하는 눈빛으로 얘기한다.
"맞아, 혼자 밥먹고 영화보고 하는게 다른거 신경쓸 필요도 없고 훨씬 편해"
줄무늬가 좀 더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그래- 그렇다니까, 근데 사람들은 혼자 밥먹는다고 하면 너 왕따 아니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잖아-"
카키색코트가 안절부절 못하는 듯, 좀 더 적극적인 말투로 공감한다.
어쩌면, 그 곳 스타벅스에 혼자 와서 죽치고 앉아있는 나같은 이들을 보고나서 떠오른 화두였을지도 모른다. 애니웨이- 무슨 필터를 귀에 장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왜 유독 저 이야기 속에 저만큼만 귀에 들어왔을까? 왜냐,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거의 비슷한 레파토리로 이야기 했었던 것 같았으니까. 그래 저 대화에 이름을 붙이자면, '고독한 자아의 매력' 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저 줄무늬와 카키색코트는 더 나아가, '홀로 유기된 자아'에 대한 이야기, 더 나아가 외로움과 허무를 공감하고 '믿음의 부재' 라는 최종의 이데아에 도달한 다음- 그것에 대한 치유로써 너(카키색코트)와 나(줄무늬)는 존재 의미가 있다 라고 빠르면 오늘 저녁에라도 모종의 합의에 다다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뭐랄까- 일전에 비포오선셋을 보면서도 어렴풋 느낀 점이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믿고있던 누군가에게서- 아니, 다시 좀 더 까놓고 얘기해서 나와는 수준이 다른 사람이라고 믿고있던 누군가에게서 나와 같은 생각과 의지, 계획 들을 발견하게 되면 내안의 뭔가가 허물어지면서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한 없이 유리된 외로운 개체로서의 자부심 같은것이 손상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글쎄, 오늘은 우울이라는 단어를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궁굼했던 것 보다 '공감'이라는 것이 진정 쾌인가 불쾌인가? 라는 문제가 더 궁굼하다.
점점 더 숨고, 내색하기 싫어하며, 성을 견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런 순간에 더 강해지는 것이다. 그런 쾌, 불쾌가 볼품없는 허영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