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Drawing Invisible 이라는 제목으로 그룹전에 참여하게 된 건 데미안이라는 친구 덕분이다. 올 봄인가 자기는 파리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소개하며 자신이 큐레이팅하는 전시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루마니아 전시가 먼저 잡혀있었기에 조금 망설이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런던 전시를 제안해왔던 스테파니씨를 통해 직접 의향을 물어와 덜컥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데미안이라는 친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그렇다고 초면인 스테파니씨와도 그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이 아니어서 전시에 참여하겠다고 말 해놓고도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월에 네개의 전시를 치르는 살벌한 일정이 잡히게 된 것이었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들어오자마자 (무려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은, 파리 전시를 주최하고 또 재단을 설립한 에마뉴엘씨의 스튜디오였다. Montreuil이라는 생소한 파리 외곽 지역에 있었기에 세번 째 방문하는 파리였지만 조금 긴장이 되었다. 적어도 백년은 넘어 보이는 삼층짜리 건물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니 뒷뜰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 있었고 방치된듯 보이지만 잘 가꾸어진 화단을 지나자 흰색과 회색으로 깔끔하게 단장 된 스튜디오 건물이 나왔다. 공장을 개조한 건물인지 긴 벽 위에 간단히 지붕이 올라와 있는 단층 건물이었다.
문을 열고 나를 맞아 준 사람은 곰같은 덩치를 한 중년의 사십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뭐랄까 용이 나오는 판타지 영화 속에 등장할 법한, 인간계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다 쓰러져가는 성의 성주같은 이미지였다. 낡은 티셔츠에 달라붙는 검은 바지, 그리고 가죽 자켓까지, 은퇴한 록커같이 보이기도 하고 커다란 덩치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가 우렁찼다. 눈가에는 주름이 멋있게 새겨져 있었다. 악수를 청해 붙잡은 손은 무지하게 억새고 단단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까지도 이런저런 일들로 시달렸는지 큼지막한 책상 위는 각종 유리병과 담뱃갑, 서류들로 가득했다. 여행은 어땠는지, 전시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이 공간은 어떤 곳인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연신 수줍은 표정을 하며 설명해주는 모습에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팡데옹 근처에 사는 데미안을 만나기 위해 우버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얼마 안되는 시간에도 벌써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엠마뉴엘은 작가는 아니지만, 파리에 두어군데의 장소를 가지고 패션,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있다고 했다. 열 일곱살 스무살이 된 아들과 딸이 있는데 어린 딸은 예술에 관심이 많아 다행이고 아들은 경영쪽에 더 관심이 많아 아쉽다고 했다. 데미안과는 데미안의 아내, 마야를 통해 알게되었는데 그에 대한 신뢰가 대단한 듯 했다. 마야는 동양철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그녀의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일본에서, 또 중국에거 어떤 일을 했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일을 더 하고싶은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데미안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보통의 다른 유럽의 집들과 달리, 한국으로 따지면 반지하 창고같은 문을 열고 데미안과 그의 아내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패션모델을 했으면 어울렸을 법한 장신에 미소년같은 얼굴로 환하게 웃어주는 데미안과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작고 동글동글한 그의 아들, 말로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의 아내 마야 역시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친구였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맞이하듯 서로 볼을 대고 인사를 나누고 나에게도 역시 따뜻한 환대의 의미로 안아주려고 한 것 같았으나 내가 멈칫하고 손을 내밀어 서먹한 악수로 인사를 대신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예전에 비엔나에 살 적에 느꼈던 훈훈한 마음씨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뉴욕에서 만났던 다소 새침했던 친구들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유럽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둘도 셋도 없을 이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은 또 어찌나 아늑한지, 파리에서도 가장 유서깊은 고블린 근처의 이 건물은 지은지 900년은 넘었을거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 그 자체인 것이다. 예전에는 방직, 염색과 관련된 장소였고 지금도 그와 관련된 학문을 가르치는 유서깊은 학교가 있다고 했다. 방이랄 것도 없는 작은 거실과 그에 연결된 작은 침실, 그리고 안뜰로 연결되는 문이 이 집의 전부였지만, 그 둘이 살기에 부족할 것 없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팔개월 된 아기를 위한 용품이래봤자 색색의 작은 블럭과 고양이 인형, 접이식 유모차가 전부인듯 했다. 무엇 하나 과한 데 없이 소박하게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700여 쪽의 전시 책자를 편집하고 있다기에 적어도 여러명의 편집자와 함께 일하고 있을거라 생각했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할거라 생각했는데, 중요한 사람이 왔으니 다른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시종일관 너그러운 모습이었다. 거실 한편에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사이좋게 와인을 한 병 꺼내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가끔씩 프랑스어로 엠마뉴엘과 데미안이 대화를 나눌 때면 대현을 위해 영어로 얘기 하라며 핀잔을 주는 마야의 마음씨가 고마웠다. 전시 얘기가 주를 이루었지만 안되는 영어로 그림과 철학, 문학에 대해서, 좋아하는 작가들을 열거해 가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피곤해지면 급격히 떨어지는 내 조악한 영어 실력도 유창하다 칭찬해주며 열심히 들어주고 또 대화를 이어가 주는 마음씨들이 고마웠다. 데미안과 마야는 사년 동안이나 다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랑을 했다고 한다. 놀라워하는 내게 사년 동안 들고다녔다던 낡은 여행가방 두 개를 내게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엠마뉴엘은 다른 약속이 있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가면서도 내가 집에 못찾아갈까봐 무진 걱정을 해주었다)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으러 나섰다. 어떤 음식을 대접해야하나, 애기가 함께 갈 수 있을만한 곳은 어디인가, 또 일요일이라 문을 연 곳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불안해 보이길래, 눈에 보이는 피자집을 보며 나는 피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들도 다행스럽게 여겼는지 근처에 맛있는 피자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피자집에서도 여전히 대화는 즐거웠지만, 졸려서 보채기 시작한 말로우를 품에 안고서 먹는둥 마는둥 하는 마야가 안쓰러워 나도 이내 피곤해하는 기색을 보이며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위에 가지런히 놓고 열심히 입가심을 했다. 데미안도 그런 아내가 신경쓰였던지 내 사인을 알아채고는 이제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부리나케 계산을 마치고는 식당을 빠져나왔다. 지하철 역 앞에서 몇번이고 돌아가는 길을 확인시켜주던 이 사랑스러운 부부와, 이번에는 나도 프랑스식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바쁜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싹 가시는 듯한 아름다운 파리에서의 첫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