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서 깨어나 가뿐한 몸을 이끌고 아침 놀을 구경하러 옥상에 올라가 본다. 볕이 지평선을 넘지 못해 아직 공기는 차갑다. 나지막한 동산 위 구름이 먼저 해를 맞이해 붉게 물들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시끌벅적 가악-가악 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서쪽으로 뒤늦게 기우는 달을 가로질러 오리 떼가 날아온다. 아마도 임진강 너머 북쪽에서 날아오는 참인 것 같았다. 해 뜨는 저편에 맛있는 아침 거리라도 있는지, 열댓 마리씩 수 백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간다. 아직 잠이 덜깼는지 아니면 들떠서 그런 것인지 시옷자 대오가 영 맞지 않는다. 어느새 보랏빛으로 흠뻑 물들어있던 구름이 옅은 주황빛으로 변하더니 산의 우듬지 너머로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며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공기는 차갑지만 볕을 받는 얼굴로부터 온기가 전해져오는 것을 느낀다. 11월 초하루, 때이른 추위지만 파주의 겨울 위세에 대해 워낙 얘기를 많이 들어온 터라, 올것이 왔구나 싶어 오히려 반가운 기분이다. 나는 겨울을 사랑한다. 한겨울 이불 속 포근한 온기와, 끝나지 않을 듯 길고 긴 밤을 사랑한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생각과 감정들에 하나 하나 이름을 붙여가며 추억하기에 좋으며, 다가올 한 해에 벌어질 일들의 단초들을 붙잡고 온갖 상상을 펼쳐보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