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점심을 배불리 먹고 유리알유희를 집어들었다. 오백 페이지를 넘겼는데도 요제프 크네히트씨의 일대기는 끝날 줄을 모른다. 심지어 평탄한 그의 삶에 이제서야 뭔가 동요가 일고 있다. 내용상 흥미진진한 전개는 없지만, (제목 탓인지) 아주 잘 숙련된 유리세공자가 현미경을 머리에 쓰고 안경알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처럼 멍하게(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런 이유인지 나는 헤세와 스피노자를 종종 헷갈려한다.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가 드디어 오백페이지 분량만큼의 순탄했던 삶을 내려놓고 새 출발을 결심한 부분에서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다.
‘잠이나 잘까?’
점심을 배불리 집에서 챙겨먹는 일에 대해서 경탄했던게 엇그제같은데,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는 것, 나아가 낮잠을 마음껏 잘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놀라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삶이 내가 그토록 원했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그런 삶을 함께 만들어가주는 동반자에게 고마움을 매 순간 표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성공을 위해, 더 많은 수입을 위해, 더 높은 지위를 갖기 위해 달려갈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매일 재확인하고, 또 지금이라도 하루하루 여유와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게된 데에 안도한다.
“책을 읽어볼까 아니면 잠이나 잘까.” 를 새 삶의 모토로 삼아야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