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만감, 이미 봄이다

“나는 1월이 되면 벌써 봄이 온 것만 같아.”

하고 그녀가 말했다.

“에이, 곧 또 추워질텐데 뭘.”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맞는 얘기가 아닌가 하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내 마음의 계절이 비로소 봄인가 싶으니 말이다. 그러한 환절의 몽롱한 기운과 봄의 간지러운 징후들이 내게 이미 찾아 와 있으니 말이다.

기운을 차린 태양이 매일매일 더 높은 궤도를 그으며 지나는 것처럼, 나역시 나만을 위해 나지막이 던지던 하루치의 기운을, 이제는 함께할 누군가를 위해 더 힘차게 쏘아올린다.

겨우내 바짝 얼어붙었던 땅이 슬며시 긴장을 놓고 말랑말랑 해지는 것처럼, 나역시 거추장스럽게 입고 있던 잘 맞지도 않는 옷가지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쓰고있던 망측한 가면 따위는 이제 벗어버렸다.

식물들이 지난 가을부터 내 준비한 겨울눈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터뜨리고마는 것처럼, 나역시 그간 애지중지 행여 다치지나 않을까 보살피던 나의 그림들을 더이상 비늘잎으로 감추어두지 못하고 세상에 하나 둘 피워 내보내고 있으니-, 분명코 내게 봄은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여름을 준비해야 할게다.

온듯 만듯 뜨뜻미지근한 온기만 전해주고 가는 봄의 심드렁한 햇살이 아니라, 세상 미치지 못할 곳이 없을 만큼 멀리 온기를 전할 수 있을만한 든든한 햇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단해진 뿌리로 담아두었던 우수와 퇴적되어있는 자양들을 모두 빨아들여 정수리까지 힘차게 올려 보낼 추진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을 부끄러움 없이 활짝 열어두고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수분을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언젠가는, ‘아-, 벌써 가을인가'하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 그렇다면 겨울에는? 다시 찾아올 겨울에는 아주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긴 잠을 잘 것이다.

모든 것이 설레기만 하는 서른일곱의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