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베르겐에 다녀왔다. 재료를 사러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다른 친구들과 원치 않는 전시를 보러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립은 서운해하는 눈치이다. 그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친구이다. 다 같이 하는 일을 누군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할 것은 무엇인가. 이곳까지 와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휩쓸려 다니기 싫었다.
베르겐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것이 없었다. 되도록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 하룻밤 머물 곳을 예약해두고, 맛있는 곳, 가보면 좋을 곳을 찾아보았다. 하나같이 해안가의 세모꼴 나무집들 사진과, 어시장,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들이 검색되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물가가 비싸다는 얘기 일색.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잠시 이들과 떨어져 홀로. 또 홀로 있고자 떠나는 것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떠나기 전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기대와는 상관없이 최근 들어 재발한 불면증이다. 차라리 무엇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잠을 청하려 누워있기만 다섯시간 째, 결국 그대로 일어나 첫차를 탔다. 버스에 올라타니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늘 바라보던 산 너머 풍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 너머 마을에는 올빅보다 더 큰 마을들이 피오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 풍경을 처음 본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버스는 하르당에르피오르의 산모퉁이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서쪽 끝까지 이어졌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은 곳에도, 조금이라도 평지가 있으면 그곳에 집이 있었다. 특이하게 이곳 지붕에는 잔디와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점차 고도가 높아지더니 스키리조트가 있는 근방을 지날 때는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른 겨울나무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고, 푸른색 전나무들은 무거운 눈을 이고 있었다. 환상적인 설경이었다. 스키는 탈 줄 모르지만, 아무 곳에나 내려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
베르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눈꺼풀은 무겁고, 세시간 동안 좁은 의자에 끼어 있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가격에 비해 좋은 곳을 얻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여장을 풀자마자 졸음이 쏟아졌지만, 이틀 중 하루의 낮을 허비해 버릴 수는 없었다. 가벼운 에코백을 메고 나와 거리를 걸었다. 대강의 방향만을 확인하며 무작정 걸었다. 오늘날 베르겐이 있게 한 항구 주변의 수백 년 된 집을 둘러보았다. 과거에는 국제적인 한자동맹의 무역항으로서 위세가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관광객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여, 열 채 남짓의 건물만 옹졸하게 모여 있었다. 건물들이 서로를 향해 기울어져 있어, 마치 사방으로 포위되어 도망칠 곳이 없는 듯 보였다. 어시장으로 유명한 곳은, 개점시간이 멀었는지 한산해 보였다. 관광시즌을 앞두고 이곳저곳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한적한 주택가를 거닐며, 이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했다. 젊은이들은 어디론가 분주한 걸음으로 사라졌고, 노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아이들보다 유모차에 실려 가는 아기들이 더 많이 보였다. 파리에서 느꼈던 것처럼, 유독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내게 있어 '유독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란, 아주 천천히 걷는 사람이다. 아주 천천히 뒷짐을 지고 땅도 보고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는 사람들 말이다. 사실, 사람들의 면면을 관찰하기엔, 거리가 너무 한산했다. 어느 순간, 거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놀랐다. 비 오고 난 뒤 서울의 주택가 뒷골목에서 느꼈던 것 같은, 일상적인 느낌이 주는 서늘함이었다. 바로 지난 주, 올빅의 레지던시에 들어온 지 삼 주째 되던 날 느꼈던 공포와 어쩌면 비슷한 느낌. 새롭던 것에 익숙해지는 순간,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일상적인 것으로, 무채색으로 순식간에 퇴색해 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워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마치, 처음 와본 곳임에도, 그곳에 몇 년 살았을 때 느낌을 미리 느껴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주택가를 빠져나와 다시 도심으로 들어왔다.
쇼핑센터와 식당이 밀집한 곳에 와서는 밥 먹을 곳을 찾아다녔다. 미리 검색해 본 몇몇 식당의 위치를 확인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비싼 가격이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관광객으로 붐비는 레스토랑에서 홀로 비싼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금 외진 곳에있는 작은 식당에 들어가고 싶었다. 숙소 주변에 작은 가게들이 많았던 것 같아서 다시 집 쪽으로 돌아갔다. 어느 식당에 갈지 망설일 수 있을만한 체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찾아간 곳은, 스페인식 요리를 하는 작은 반지하 식당이었다. 생선요리를 먹고 싶었는데, 마침 생선요리 전문점이라는 듯, 메뉴판에 그려진 커다란 생선 그림을 따라 들어왔다. 나는 '구운 채소'와 '오늘의 생선'요리를 주문했다. 오븐에 구운 흰 살 생선요리와 샐러드가 나왔다. 어쩐 일인지 구운 야채가 생선보다 더 맛있었다. 따뜻한 음식에 맥주까지 마시고 나니 온몸이 나른했다. 곧장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들어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 열한시였다. 무척 외로웠다. 술을 한잔 마시고 싶어, 다시 집을 나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따라 왔더니, 낮에 들렀던 화방 근처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였다. 늙은 남자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클럽을 지나가니 또 다른 선술집이 있었다. 가게 이름은 Three Lions. 창문 너머 통기타를 연주하는 가수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머리의 금발 남자는 어디선가 들어봤던,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을 법한, 90년대 히트곡들을 부르고 있었다. 빈자리가 많은 한산한 테이블마다 나와 같은 외로운 남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고개를 무대 쪽으로 고정시키고 앉아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찾아온 지역 사람들은 딱히 할 말은 없는지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가끔씩 술을 입에 가져갔다. 아는 얼굴이 나타나면 어깨를 툭툭 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흥을 돋워보려고 조금씩 몸을 흔들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그들도 내가 아까 낮에 느꼈던 그, '익숙함'이 주는 공포를 떨쳐내 보려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보고도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왜 왔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을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낯선 이방인에게서 그 이상을 궁금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늘 그 이상을 궁금해 하길 바란다.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먼저 조용히 듣는 편이다. 많이 듣고 그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상대방은 신이 나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정장 나에게 그만큼 많은 것을 물어보지는 않는다. 나는 상대방이 궁금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잘 못 하는 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나는 호감을 느낀다. 한 잔을 더 마실까 하다가 그렇게 조촐하게 홀로 생일을 기념하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홀로 있기 위해 왔다. 홀로 있어서 외로운 것이다. 그뿐이다. 외로움은 나에게 익숙한 것, 견딜 만 한 것. 이라 생각했다. 물론 견딜 수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은, 홀로있고자 하는 나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지만, 물론 더는 외롭지 않아서 좋은 일이다. 오늘 같은 날 누군가와 함께 거리를 거닐었다면, 분명 더 많은 것들을 감상하고 더 많은 것들에 감탄했으리라, 그래서 더 많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으리라...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홀로 있어서 느끼는 외로움도, 함께 있어서 느끼는 부담감도 다 느껴본 적 있는, 와 본 적 있는, 익숙한 감정이다.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난 터라 정해진 체크아웃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아직 서너 시간 여유가 있었지만, 시내를 다시 둘러 볼 생각은 없었다. 어딘가 편안한 카페에 틀어박혀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한다니, 나는 매우 자주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 정리가 꼭 필요할 만큼 복잡한 생각은 없다. 단지, 잠시 멈추고 싶은 욕구가 늘 따라다닌다. 어디엔가 조용히 머물면 좋은 생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늘 있다. 조용한 곳에 대한 갈망이랄까. 조용한 올빅에서도 나는 더 조용한 시간을 찾고 있지 않나.
별 기대 없이 찾아간 곳은 Bergen Kunsthall이었다. 노르웨이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물론 뭉크가 빼놓을 수는 없겠다. 작품 수는 오슬로의 네셔널 갤러리와 비슷했지만, 시설은 조금 낙후된 듯 보였다. 작품은 무척 좋았다. 특히 내가 매일 보고 있는 피오르 풍경을 작가마다 조금씩 다른 화풍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특히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대표 작가로 꼽힌 Johan Christian Dahl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바다에 대한 표현 연구, 구름에 대한 표현 연구 작품들이 아름다웠다. 특히 야경을 그린 작품이 많았다. 구름 뒤에 숨어서 먼 곳의 풍경을 밝히고 있는 달빛을 아주 잘 표현한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림에 풍경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면서도 망설였던 나에게, 실마리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간, 좋아하는 날씨, 좋아하는 장소를 그리면, 그것 장면 속에 나의 정서가 담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 정서가 잘 표현되었다면, 그 마음이 담겨 보는 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라는 믿음을 얻고 돌아왔다. 풍경에 감정을 담는 법. 그것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서야 생각난 것인데, 음악가 그리그에 대한 장소들을 찾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