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25, 2023

미술관엘 가면 나는 왜인지 온갖 억울한 일이란 일은 혼자 다 겪은 사람처럼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또 세상 시니컬한 사람이 되어 입을 비죽거리며 비평을 늘어놓기 일쑤다. 특히 산-사람의 전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아마도 인격이 미성숙해서 숨겨둔 열등감이 발현하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 전시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닌데, 이제라도 좀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작품을 감상하려 노력한다. 아내와 함께 전시를 보기 시작한 이후, 그의 감상을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한 이유이다. 아무튼 그런 태도로 아내와 함께 관람했던 최근 전시들은 다 좋았다. 오늘 유근택 작가의 전시도 그러했다. 일면식도 없긴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학번 선배의 전시이다보니 작품에 더 관심이 갔다.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면 그 작가가 ‘한국적’인 이라는 수식어의 굴레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먼저 보게 되는 것 같다.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들 열에 아홉은 본인이 마치 한국적인 것을 계승 발전시켜 세계에 그 위상을 널리 떨쳐야 할 것만 같은 소명 의식을 갖게 되는데, 그 망령(?)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들 같은 노래를 다 외워 부를 수 있는 게 자랑이었던 우리 세대에게는 더더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사명감을 조금씩은 다 갖게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민족주의적 시각이 세계적 레벨의 작가가 되는 데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세계무대로 나아가는 데에 ‘한국적인’, ‘동양적인’이라는 한 겹의 포장지가 이목을 끄는데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한국적인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적극적 해명과 설득이 있지 않고서는, 되레 불필요한 한계를 스스로 지우는 셈이 될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기보다,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며 직면하게 되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버티며 생긴 상처와 굳은살, 맷집 같은 것이, 한국에서 버텨낸 작가로서 자연스레 갖게되는 ’한국적‘인 무엇이 아닐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튼, 유근택 작가의 작업에서 그런 맷집과 굳은살,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동양화니 서양화니, 한국적인 것 따위 지긋지긋하니 제발 나한테 묻지 마쇼-라는 듯한 태도 말이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전공을 배운 사람으로서, 작품 너머에서 작가가 종이를 두드리고 짓이기고 해치는 과정에서 틀림없이 어떤 해방감을, 쾌감을, 자유를 느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화면 넘어 그대로 나에게도 전달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의 자유로움이 무척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아내도 같은 전공인지라, 그 마음을 알고 거대한 분수 그림 앞에 서서 함께 감탄하였다. 나는 멋진 화초 그림 앞에 서서 마음속으로 작가에게 열렬한 축하의 인사를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