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덕수궁미술관에서 장욱진 전시를 관람했다. 작년에 국제에서 열린 유영국 전시에 이어, 올해 호암미술관 김환기 특별전, 그리고 장욱진까지, 잘 공부하지 못해 몰랐던 근대 한국 작가들 전시를 연달아 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일본에서 서구 미술을 배웠고 전쟁을 겪었으며, 유화로 구상과 추상을, 한국적인 무언가를 추구한 것은 비슷하지만, 미술을 대하는 태도도, 작업 방식도 조금씩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장욱진의 삶은 김환기에 비해 야망이 없고 안분지족하며 도인처럼 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런 분방하고 유유자적한 삶 자체가 그의 야망일 수도 있겠다.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작업실에는 세 딸과 아내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을 것만 같다. 괜히 소주 한궤짝 들고 찾아가면, 러닝셔츠를 입고 나와 ‘아이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하며 반겨줄 것만 같은 푸근한 인상. 쪼그려 앉아 목판을 파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아내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해의반박 解衣般礴‘! 과연 그렇네- 맞장구를 치며 그의 호방한 먹작업을 보고 감탄했다. 나는 아마 김환기처럼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고픈 야망이 커서- 장욱진처럼 호방하고 자유롭게 작업하지는 못할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 둘이 내 친구라면 아마 장욱진 집에 더 자주 놀러가고 더 그리워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