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서 세상을 대하는 태도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제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릴 뿐이에요. 저는 시위에도 나가지 않고, 기부하지도 않아요. 거리를 걷다 보면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려와요. 모두가 약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듯 보여요. 나도 어쩌면 약자이고 피해자인걸요. 세상에 수많은 약자들 중 누구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어 줘야 하나요. 누가 더 약하고 힘이 없는지, 목록을 만들어 순위를 매기고 제일 아래에서부터 선택해야 하나요. 아니면, 나와 관련된 사람 중에서 도울 사람을 찾아야 하나요. 돈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터전을 잃은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요. 저도 그 세 가지를 잃어본 적 있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따로 있답니다. 바로 아름다움이에요. 사람들이 잃어버린 건, 아름다움이에요.

돈 많은 기업가나 재벌들이 약자들에게서 빼앗아 간 것은, 집도 아니고, 일자리도 아니고, 돈도 아니에요. 아름다움이에요. 기업은 더 많은 돈을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가기 위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느라 늘 혈안이 되어있죠. 이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라면 아무도 그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을 테니까요. 기업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아름다움을 팔 수밖에 없어요. 종일 광고에 노출된 우리는 그래서, ‘지금 이대로의 우리는 아름답지 않다’는 얘기만 듣고 사는 셈이죠. 재벌들이 가난한 자들에게서 아름다움을 빼앗아가는 방식도 그와 비슷해요. 재벌들에게 아름다움은 곧 자신이 가진 ‘부富 ’예요. 자신이 믿는 것처럼, 부유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출한답니다. 가난한 자들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부를 공공연히 자랑하며, 가난한 자들이 가진 아름다움이 무가치한 것처럼 포장하기 바쁘죠. 기업가와 재벌들을 타도하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들이 더 많은 아름다움을 축적할 수 있게 해 주는 사회 시스템을 비난하고 싶은 것도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싶어요.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상념과 갈등, 감정들을 숨기고 차단하는, 그래서 자신을 무디게 만들고 마는 사람들에게 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감정의 깊이를 더하고, 생각의 주름을 더욱 세밀하게 다듬는 데에 게으른 사람들에게 말이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식의, 떠도는 말을 이마에 방패막이처럼 붙여놓고서는 자신의 나태한 지성을 적당히 합리화해버리는 자들에게 말이죠. 기업가와 재벌들의 배가 점점 더 나오는 건, 그들이 거미줄처럼 쳐 놓은 가치망에 스스로 가치 판단할 수 있는 지성을 마비시켜 내팽개쳐버린, 게으른 너희 우리 들 때문이라고 말이죠.

‘자기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때만 되면, 스님이나 심리학자들이 책 좀 팔아보려 힘들고 지친 현대인들을 다독여주려고 하는 그저 그런 말 같지만, 내가 말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에요. ‘아름다움’은 곧 ‘이야기’예요. 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자연스레 넘쳐나오는 물, 풍겨 나오는 향기와 같은 그런 이야기 말이죠. 그런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게 되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되죠. 자신이 느꼈던 어떤 복잡한 감정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인지, 번번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 안에는 어떤 중요한 의미가 있었는지를 찾아내게 되죠. 이야기를 나누며 쌓이게 되는 우정과 사랑은 덤이고요 또한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가장 합당한 표현 형식을 찾게 됩니다. ‘경험 속에서 깨달은 바를, 그에 합당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순수한 형태의 예술표현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없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표현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깨달은 바, 즉 내면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원래 당신에게 있었던 무언가가 아닙니다. 발견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생겨나는 것이지요.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그려내는 그림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릴 뿐입니다. 매일 훈련하듯 내면의 이야기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찾아낸 그 이야기 속에서 의미, 즉 아름다움을 발굴해 내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라면, 표현은 어찌 되어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의 그림 속에서 제가 발굴해 낸 아름다움을 감상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독해하기 위해서는 물론, 그림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저의 그림에 표현된 것과 유사한 감정, 생각을 꺼내어 비교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름의 경험과 추억을 통해 그림을 이해할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음을,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 외부로 향한 시선을 내부로 돌려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끄럽게 외쳐대는 외부의 아름다움에 휩쓸리거나 기댈 필요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 절대적인 무엇이라 여겨졌던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 행위를 통해 제가 기대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로서 세상을 대하는 저의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