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전시된 작품의 필선 거의 대부분을 이 붓으로 그은 것이다. 종각 송지방에 갔다가 오리나무 열매 한 봉지를 사고 문득 집어 온 붓. 고려 산마면상필山馬面相筆이다. 면상필이라는 명칭은 아마도 인물의 면상面相을 그릴 때 세밀한 선을 긋기에 적합하다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세필이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황모黃毛(족제비의 꼬리털)로 맨 붓이 가장 좋다고들 하는데, 어딘가에서는 그냥 누런 짐승 털이면 인조모와 대비되는 표현으로 다 황모라 하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이 붓의 털은 중국 북부 산양의 털로 맨 붓이라고 한다.
그림을 시작할 때, 나는 보통 접시 위에 여러 종류의 세필들을 늘어놓고는 한 번씩 그어본 다음 마음에 드는 붓이 나타나면 끝까지 그 붓을 사용하는 편이다. 서예 붓도 그 용도에 따라, 서체에 따라 다른 붓을 골라야 하듯, 나의 경우 반복적으로 균일한 선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그에 맞는 붓을 골라잡는다. 붓은 털의 종류에 따라, 인조모가 섞인 비율에 따라 성질이 조금씩 다르다. 탄력이 좋은 털은 붓끝이 쉽게 모이고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얇고 세밀한 묘사에 유리하지만, 한 번에 물을 머금을 수 있는 양이 적다. 그 말은 먹물을 한 번 머금고 그을 수 있는 선이 많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자주 먹물을 묻히다 보면 농도가 미세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반면 물을 많이 머금을 수 있는 털로 맨 붓은, 조금 더 많은 선을 그을 수 있지만 복원력이 다소 떨어져 계속해서 붓끝을 정돈해야만 한다. 또한 물을 오래 머금고 있는 만큼 처음 선을 그을 때의 농도와 물이 다 할 때의 먹의 농도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꼭 탄성이 좋은 붓이 좋다거나, 물을 많이 머금을 수 있는 붓이 좋다고만 말할 수 없다. 그림에 필요한 기법과 그 목적에 맞는 붓이 가장 좋은 붓인 것이다.
열 네점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가장 큰 수고를 해 준,
붓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