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되기 그림에 부치는 글

나의 아버지는 고물상을 하셨습니다. 주로 차량에서 나온 폐금속을 분류하여 재활용하는 일이었지만, 다른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업체와 공간을 함께 쓰셨던 터라, 작업장에는 온갖 종류의 낡은 물건들로 가득했지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논밭뿐이었던 마곡동 아버지의 일터에 가는 일은 나에게 늘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별 희안한 잡동사니들 속에서 처음 보는 기계 부품과 전자기기들을 뒤적거리는 일이 나에게는 보물찾기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작업장 한편에는 오래된 소파들이 산처럼 가득 쌓여 있었는데, 그 소파 미로를 탐험하고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일이 그곳에서 가장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동료들과 자장면을 시켜 드시기 시작하면, 나는 몰래 사무실을 빠져나와 소파산 등반을 시작하곤 했습니다. 오늘처럼 하늘이 맑은 어느 날, 그 소파산 꼭대기 가장 푹신한 곳에 누워 자라보던 네모나고 높은 하늘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듯합니다. 아홉 살 꼬마가 뭘 알겠는가 싶지만, 그때 느꼈던 어떤 해방감이 최초로 느꼈던 자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딘가 잠시 숨어있을 만한 소파산을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저의 형님뻘 되는 남자 관객분들이 이 그림을 유독 좋아해 주셨어요. 때로는 어딘가 나 자신을 숨길 수 있을 만한 작고 아늑한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곳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부동하는 바위가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