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

어떤날 만난 일식이다.
기다려왔던 일도 아닌 우연한 사건,

달이 까맣게 해를 가린다.
사위가 어두워지고. 이내곧,
달이 하얗게 해에게서 멀어진다.

그날 이후로,
난 다시만날 그순간을 꿈꾸게 되었고.

숨죽인채 다시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흐릿하지만 궤도와 주기를 의식하며
기다림을 잊은채 살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문득,
눈을 부비며 처음 만났던 그 까만원을
다시 만날수 없다는걸 어렴풋 깨닫고 나서부터
나는 그것과 닮은 것을 그려보기로 했다.

하얀 종이위에 까맣게 원을 채웠다.
달이 해를 가리듯.

모양은 비슷했지만,
그대로 죽은듯 움직이질 않았다.

달이 해에게서 멀어지듯.
다시 하얗게 지워본다.

남은건 결국 처음처럼 하얀 종이뿐.
만져보니 종이가 조금 닳았다.

살며 꿈꿔오던 것은
완전에 가까웠던 그 까만 원이었지만.

결국 내가 그려 낼 수 있는 것은
바닥이 닳도록 그것을 지워야만
완성되는 그림이었나보다.
쟂빛 보푸라기만 남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