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으로 미안합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다" 라는 말은 얼핏 보기엔 도덕적 '양심' 이라던가, '이타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 처럼 여겨진다. 흰색 소나타 뒷 유리에나 붙어있을 법한 '내탓이오' 라는 천주교의 슬로건 처럼 말이지.

하지만 여기 악크로스더유니버스에서 해석하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다'라는 말의 뉘앙스는 이러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 들에도 마치 나 때문에 벌어진 일 처럼 여길수 있는 놀라운 능력에 대한 이야기"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니냐고 묻는 이들을 위해 뉘앙스를 조금 더 예리하게 바꿔보자면 이렇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도 마치 나의 크나큰 <영향력> 때문에 일어난 것 처럼 여길 수 있는 우리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이야기" 여기까지도 뉘앙스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다면- 힝.

고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린다" 라고 하는 것은 양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일들에 자신의 영향력이 발휘되고 있고 모든 사건들이 자신이 영향을 끼침으로서 벌어진다고 믿는 <허영>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일반화 하기>나 <진부하게 하기>에 좀 더 소질이 있는 사람은 "우리는 원래 외부의 모든 것 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을 투영해 보고자 하는 습성이 있는 것 뿐이고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 라며 투덜 거릴지도 모르겠다. 쳇-

어쨌든 장황하게 그 은폐된 <허영>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 한 이유는, 우리가 종종 서로에게 '미안해-' 라는 쓰잘떼기 없는 고백을 나눌 때에 그 것이 그 <허영>이 정체를 드러내곤 한다는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이다. 그 정체란, '미안해' 라는 고백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될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쾌함의 정체이고 '미안해' 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할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또다른 미안함의 정체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나의 결정으로 네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며, '너의 결정으로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고 가는 '책임'과 '사명'의 전가를 통해 끈적한 '정' 따위를 느끼고 싶어서, 혹은 어떻게든 '엮어짐'을 통해 외롭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미안하게 하고 미안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흠

그래서, 우리 악크로스더유니버스 에서는 '미안해' 라는 말 속에 숨겨진 저 '오만함' 과 '허영'을 지탄하는 바 이며, 경멸하기로 따지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랑해' 라는 말에 숨겨진 말초적이고 무책임한 '공격성'과 더불어 우리 스스로 경계하고 경멸하기로 오늘 이 자리에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