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얼마나 좋은 친구가 있는지를 다른 이에게 설명하는 일이란,
소중한 감정일 수록 더이상 진부해지지 않도록 감추어두고 내 안에서만
되새김질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처럼, 아쉽고 불안하며,
내게는 건전하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입 밖으로 그것이 나오는 순간,
오염되고 불순해져버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냐하면 그 말은, 그를 칭찬하거나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허영에 달고 맛있는 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벽을 오늘 하루만 모른척 할 수 있고, 그 금기를 단 한번 어길 수 있다면
몇년이 지났는데도,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고,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래서 아무 것도 약속할 수 없고,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이 사람에게,
아직 남아있는 묵은 레파토리를 이야기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사람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전하고 싶어진다.
이 사람에게 만큼은,
내 내면의 부조리에 대해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에게 그것이 결론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라는
그 고마운 전제가 확고하기 때문일테고
심각한 표정으로 정의내리거나 심판하는 대신에
서로를 약올리고 키득거릴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일게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말들이 입술에 침이나 바른 말
일수도 있다는 유쾌한 불신도 존재
이사람은 내게,
슈타인 박사의 니나 부슈만도 아니고,
히스클리프의 캐서린도 아니고,
와타나베의 나오코도 아니고,
제시의 셀린느도 아니다.
더 많은 말은 아껴야지.
생일 축하해. 그리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