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ercy mercy me

진짜에 대한 규명이 불가능하다면, 가짜에 대한 비난도 불가능하지 않나요. 제가 가짜라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는 진짜를 진짜처럼 보이도록 하기위해 한번쯤 가짜가 되어야만 하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사람들은 가짜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서 너무 애쓰는 것 처럼 보여요. 이런 날씨엔 마빈 게이의 음악이 좋겠어요. 들어보셨나요. 멀씨 멀씨 미. 우리에겐 카테고리를 나누고, 규명하고, 정의하려는 고질적인 습성이 있는가봐요. 구조주의에 대해서 한번쯤 공부해봐야 할 것 같아요. 고상하고 우아하게 투정 부리고 싶어서요.

어쩌면 당신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포함한 이 모든 논의들이 시시해져 버려서, 혹은 그것을 입밖으로 말하는 것 조차 시시해져버려서 죽어버린게 아닌가 하고. 회의주의에 뛰어드는일은 누구나에게 참 쉬운 것 같아요. 인생은 아이러니이고, 육체는 비극, 비극은 남녀노소 누구나에게 사랑받는 장르이니까요. 그런데, 회의주의자에게 가장 슬픈 일은 말이죠. 이 세상이 따분하고 시시하다는 각성쯤은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다는거에요. 그리고 그 누구나가 따분하고 시시한 생을 멀쩡하게 살고있다는 거에요.

만약에 생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일이 이 버스에서 저 버스로 갈아타는 것처럼 간단하다면. 그리고 그렇게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그 쪽으로 가보고 싶지 않을까요. 죄책감같은걸 느낄 필요없이 말이죠. 플라톤이든 니체든, 부처든 더이상 따분해지지 않으려고 윤회를 믿어야 했던건 아닐까요. 이 모든 생을 또다시! 반복해야한다면 적어도 지금 뭔가 해야할것만 같거든요. 들어보지 못한 음악을 찾아 듣는다거나, 읽어보지 못한 책을 펼친다거나. 보고싶은 사람을 만나러 간다거나. 하면서 말이죠.

과연,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