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대한 악의

나는 꽃의 개화를 지켜 본 적이 없다. 피어있는 꽃 앞에서만 꽃이라 불러봤을 뿐, 그것이 피어나는 과정을 지켜볼만한 여유와 인내가 없다. 꽃이 지는 것 또한 본 일이 없으니 오로지 만개한 것들에만 이름붙이고 사랑했던가보다. 꽃은 주변의 녹음과 반대되는 색으로 피어남으로서 오로지 자신에게 주목해야 할 것임을 주장한다. 하여 자신을 피어나게 한 본체의 소중함과 그 푸르름을 일순 꽃을 위한 배경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막 피어날 것들의 발육이나 시들어버릴 것들의 쇠퇴를 예감하지 못하도록 취하게 만든다. 세상은 꽃처럼 만개해 있는 완성형의 사물과 사람들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일종의 야생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