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먹한 하늘 잠시 훌쩍이는가 싶더니 비를 흩뿌린다. 이제 막 연두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앞산도 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대기에 빛이 바랬다. 행여 이제 막 틔어나온 떡잎들에 중국 공장서 날아온 나쁜 액이 들까 걱정되어 옥상으로 올라간다. 삼삼오오 뿌린대로 자란 녀석들은 씩씩하기만한데, 옥상에 갇혀 휘몰아치는 사나운 북서풍 한자락에 오싹한 기분이 들어 나는 한달음에 삼층으로 내려와 이중창을 닫아 잠근다. 콘크리트 벽체 안에서 을씨년스러운 바깥을 바라보며 한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공들여 쌓아 태풍에도 끄떡 없는 벽체. 그 안에서 느끼는 안도감. 감히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 여유가 있을때(바깥 상황이 안전할 때) 어느때고 드나들 수 있는 미닫이 문. 그런 것들이 내가 삼십오년 지은 ‘나'라는 건축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자재와 공법으로 세워졌으므로 그에 대한 자부심 또한 크고 거대하였다. 그런 대단한 자부심으로 세워놓은 건축물에 물이 새고, 틈이 벌어지고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최근에야 깨달았다.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고 만(말) 폐허를 바라보며, 이제 힘들게 벽을 쌓고 안전함을 추구하기보다는 물과 불, 바람을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편이 낫지 않겠나 싶다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더 단단한 재료로 더 완벽한 성체를 쌓을 생각에 몰두한다.
내가 나에 거주하며 나라는 집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세상을 향유하는 것- 이 아니라면, 나도 너도 누구라도 마음껏 밟고 드나들 수 있는 공터가 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들어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와 그 흔적을 무너뜨려야 할 것이다. 하여 나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고 너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몰라, 나도 나를, 너도 나를 ‘나’ 혹은 '너'라 지칭하거나 부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집없는 형태의 '나’, 한 곳에 거주하지 않는 '나’, 바람막이 없이 바람에 직접 부데끼는 '나’, 아무데도 없는 듯 있는 '나'의 형태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검토해보고 새로운 나를 발명해보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