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 시 무렵이면 낮 동안 동쪽 산너머에서 하루를 보낸 기러기들이 날아온다. 아침 여섯 시엔 서쪽에서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 꼬박 열두시간 동안 저 산너머 어딘가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볕도 쬐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단체로 귀가하는 것일 게다. 기러기들이 시옷자 대형을 유지하며 많게는 백여 마리, 적게는 수십여 마리가 함께 노을지는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알려진 대로 기러기들이 시옷자 대형을 유지하는 것은 선두의 기러기들이 뒤따라 오는 기러기들의 공기 저항을 최소화 시켜주어 최대한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날아가며 끼룩끼룩 시끄럽게 내는 소리는 선두의 기러기들을 응원하는 소리라고 한다. ‘응원의 목소리라니, 너무 인간적인 발상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인도 기러기는 무려 에베레스트 산을 넘어 8,900킬로미터를 비행하기도 한다고 하니, 과연 힘내라는 응원이 필요할 만도 하다. 장거리 비행을 위해 오랜 세월 그러한 것들을 스스로 터득하고 전수해 온 기러기들이 참 영묘하게 느껴진다. 여기 파주의 기러기들도 이제 봄이 오면 다시 조금 포근해진 시베리아로 날아가 여름을 날 것이다. 그렇지만 왜? 매년 그렇게 얼어붙는 고향 땅을 떠나 따뜻한 곳으로 내려왔다가 왜 이곳에 더 머물지 않는지 갑자기 의아하게 느껴졌다. 제 고향 땅이 그리 춥다면 애써 멀리까지 내려와 먹을 것이 더 풍부해질 여름, 가을을 기다리지 않고, 또는 제 고향보다 포근한 겨울이 기다리는 이 땅에 정착하지 않고 미련없이 다시 귀향하는 것일까?
머리가 나빠서? 아니다. 기러기들은 그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저들에게 딱 필요한 만큼만 얻고 그 이상을 욕심내지 않기 때문일 게다. 자유로운 성정의 그들에게는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적인 습성이 없는 것이 당연할 게다. 자유롭지 않으면 그게 어찌 새일 수 있겠는가. 아니면 기억력이 나빠서? 그것도 아닐 게다. 기러기들에게는 인간처럼 과거에서 미래로 뻗어가는 단순하기만 한 선형의 시간이 아닌, 아닌 환형의 시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엔 이곳에 왔다가, 여름엔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일 뿐, 다음 다음 계절에 대해, 내년에 대해, 또는 내후년을 미리 걱정하여 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러기들이 매년 돌아오고 돌아가는 이유가 자유로운 습성이나, 환형의 시간 개념 때문이 아니라면, 어쩌면 시베리아 땅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아주 맛있는 곡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