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나 사회부기자, 혹은 사생아

"우주비행사? 지원해봐."

"응. 사실은-"

"사실은?"

"웹사이트에서 지원서를 입력하다가 학력을 입력하는 페이지가 맥에서 지원이 안되는 폼테그를 썼길래- 그만뒀지."

"좋구나!"

"뭐가?"

"핑계가."

"아니, 뭐. 사실은 우주비행사가 되고싶다기 보다는, 우주에서 죽는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거든. 상상해봐- 그 마지막순간을. 기체를 수리한답시고 뒤뚱거리며 우주선 본체위에 선 우리의 주인공을. 커다란 헬멧에 연결된 헤드폰에서는 계속해서 암호같은 지시가 흘러나오겠지만 그에게 그 언어는 더이상 의미가 없을꺼야. 이미 그는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어있을테고,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순간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오직 거친 숨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을테지. 천천히 산소가 공급되는 케이블을 자신으로부터 해체하고나서 그는, 전인류를 등지고서 그 반대방향으로 꺼져있는 공간을 향해 힘껏 한번 발을 구르겠지. 이를테면 안드로메다방면- 이라던가 마젤란은하쪽으로 라는식으로 말야. 그저 한번 힘껏 뛰어오르는것만으로 그게 바로 마지막인거야. 마지막인동시에 영원이기도 한거지. 그러자 지상의 관제소에서는 다급하게 무슨일이 일어난것인지를 그에게 러시아어와 영어가 뒤섞인 언어로 물어보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

"러시아어나 영어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은게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응. 아니. 뭐라고? 아- 가만히 있어봐, 이미 너무 멀어져버려서 모두가 그를 포기해야했을때 쯤. 그가 전인류를 향해 너무나 침착한 목소리로 한마디의 말을 하는거야. "달의 꼭대기에서 지구는 푸르고, 여기서 내가 할수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군요" 라고. 아!"

"음-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아마도 '톰'?"

"음- 알고있었구나. 뭐 이름이야 '죤'이나 '잭'이어도 상관없어. 이런. 넌 참 상상력이 없구나. 상상해봐- 시간과 공간개념조차 무관한 그 곳에서- 수천년동안 썩지도 않고- 그저 우주먼지들에 조금씩 풍화되어 사라지는 그 광경을! 아- 그곳에서 죽게되면 영혼은 어디로 가게될까? 이곳에서 우리가 말하는 영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곳에서도 유효할까?"

"음- 좀 사치스러운 죽음인걸. 죽음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건 불순해보여. 실제로 톰은- 아니 잭이었나? 그가 남긴 마지막말은 내 생각엔 '이 죽음에는 아무런 숭고한 목적도 거창한 의도도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의미하는것 같은데? 말하자면 마치 너같은 숭배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듯.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그는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나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몰라. '아아- 결국, 실패다!'"

"음- 그래. 그편이 더 숭고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숭고하다고 생각하면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일인가. 아아 모르겠다. 하여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지원은 실패다."

"그래 잘했다. 여기 지구에 남아있어줘. 이 외계인같은 녀석아."

"그래. 그래. 물론이지. 그런데 상상해봐."

"뭘 또 상상해보라는거야."

"우주비행사를 막연히 꿈꾸고있는 또 다른 주인공을 상상해봐. 예를들면 나같은 인간- 말이지. 너무도 평범했던 그는 일단 우주비행사가 되기로 했다는 결심을 조심스럽게 발설하기 시작할꺼야. 그가 살아왔던 지난 날들에 비해 너무도 독특한 결심을 가졌다는데에 대해 그 스스로 흐뭇해하면서 말이지. 주위의 친구들은 그런 그의 결심을 듣고서- 그래 할수있어! 라고 유난스럽게 격려해줄테고, 그것이 빈 말인줄 알면서도 그는 왠지 우쭐해질지도 몰라.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은 애초에 포기했을테고, '그래 나중에 우주비행사가 되어서 당당히 나의 노고를 위로받자-' 라고 짐짓 비장한 태도로 다짐할지도 몰라. 자- 우주비행사가 되기위해 그는 먼저 영어에 통달해야만 하겠지?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은 종로같은데서 밤낮으로 토익이든 토플이든 닥치는대로 수강하기 시작했어. 또 러시아어나 우주물리학이나 우주항공에 대한 일반을 알아야했기 때문에 유학을 고민하기 시작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학위- 같은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고. 어쨌든 매달 조달해야만하는 학원비와 유학자금 때문에 고민만 더 늘어나기 시작했을테고, 그 때문에 그는 돈이 된다면 닥치는대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에 투신하지. 그는 그런 고된 나날들을 얼마간 유지할수 있을지도 몰라. 왠지 그런 비장미가 깃든 자신의 삶이 어떤 정해진 운명인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그를 숙연하고 진지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거든. 어쨌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덧 서른 중반의 성인이 되어버린 우리의 주인공이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그때 그는 아마 러시아어 남성명사 여성명사 같은걸 외우고있었을지도 몰라, 갑자기 이런생각이 드는거야."

"어떤생각?"

"음-"

"뭔데?"

"그러게- 무슨말을 했을까? 뭔가 이 모든 이야기를 허탈하게 만들만한 파괴력있는 마땅한 말이 생각이 안나네. 음-"

"아아- 됐다- 그만해라."

"엇. 그래! 바로 그거야! 자, 들어봐- 독립문 고가도로를 지나고있던 버스안 맨 뒷자리에 앉아서 러시아어 단어장에 고개를 떨구고 있던 우리의 주인공이- 무거운 고개를 들고 창밖에 펼쳐진 서울하늘을 응시하며 이렇게 읖조리는거야. '아아-! 됐다. 이정도면 됐다. 그만두자.' 라고 말이지. '이정도면 됐다-' 라는 그 말은 어떤 절망이나 허탈감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안도감이나 평정심에 가까운 말인거야. 아! '톰' 처럼 달의 꼭대기에 서서 푸른 지구를 바라볼수는 없게 됐지만, 그는 그 순간, 독립문 고가위에서, 나는 그저 우주먼지와같은 무기력한 개체일 뿐이다- 라는 깨달음을 얻게된 것이지! 어때? 감동적이지 않니. 그런데, 지금 내가 우주비행사 이야기를 하고있긴 하지만, 난 정말 우주비행사가 실제하는지조차 의심스러워. 적어도 현실적이다 라고 말할수 있는것들은 적어도 중력의 영향아래 있는 어떤것이어야 할것 같지 않니? 우리의 시야를 떠난, 우주공간에서의 그 무엇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그렇다고- 음모론 같은걸 주장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어휴- 숨이나 쉬고 말해라. 어쨌든, 넌 아마 우주에서든, 지구에서든, 독립문 고가 위에서든- 그 어떤 곳에서든 그 외계인같은 사고방식 덕분에 고상함을잃지 않고 살 수 있을꺼야. 그래. 이제 우주비행사는 됐고, 또 뭐가 되고싶으니?"

"음. 정신과 의사나, 사회부 기자, 혹은 사생아."

"뭐? 사생아?"

"하하. 농담이야. 뭐, 소설가가 되고싶다고 말하곤 하지-"

"음- 적어도 우주비행사 보다는 현실적이군. 굳이 소설가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어? 이유를 묻는건 실례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니야, 이유를 준비 해 두고있는 사람에게 이유를 묻지않는게 더 결례지."

"그럼 물어보지 않는게 좋겠군."

"그럴 경우엔, 물어보지 않아도 이야기하면되지. 소설가여야만 하는 이유는 뭐냐면- 말야."

"잘도 말하는군."

"그래! 소설가는 꼭 텅 빈 우주공간에 조난당한 우주비행사같기도 해. 뭐랄까 스스로가 스스로를 우주미아로서 존재할수밖에없는 존재로 자각하는 그런 유니끄한 존재말야. 그리고, 뭐랄까- 소설가들은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는것들에 대해서도 늘 과도하게 인식하고, 매 순간 흘러넘치는 감각과 인식의 홍수에 장애-를 느끼는 사람들이잖아- 프루스트식의 과잉이랄까. 그것은 마치 지구상에서 생활하는 우리 인류는 매 순간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다는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데, 우주인들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숨을 쉰다는것을 인식해야 하는것처럼 말야. 그리고 소설가가 쓴 한편의 작품은 마치 우주에서처럼 부패하지도 않고, 인쇄에 인쇄를 거듭하며 서로다른 독자들을 경계없이 드나들며 마치 또다른 생명인양 죽지않고 계속되지- 굳이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독자들이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마모되는 펄프랄까, 마치 광속으로 움직이는 우주먼지에 천천히 천천히 풍화되는 그런 이미지와도 같지않니? 왠지- 내가 한 이야기지만 그럴듯 한것 같다."

"음, 그렇다면, 아까의 비유로 돌아가서- 우주비행사가 꿈이었던 우리의 주인공의 일화처럼, 너도 올바른 글쓰기를 배우기위해 '올바른 국문법'에 관련된 책들을 공부해야 할지도 모르고, 애초에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지 못한것에 대한 강박을 가지게될지도 모르고,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수입이 없다는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그러던 어느날 독립문 고가위의 버스안에서 '그래, 이정도면 됐다-' 라고 말하게될지도 모르는일이고. 우주비행사든 소설가든 정신과의사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라고 느끼기 전까지의 과정은, 누구에게나 꼭 같이 고단하고 진부한 일상의 반복인거야. 음.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필요는 없어.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간단해지긴 하지만, 그 고단한 과정은 모든 소설가에게 꼭 같이 할당된 것이고, 단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으면, 견뎌낼수만 있다면, 그것이 되는거 아닐까?"

"뭐가 된다는거지?"

"소설가나 우주비행사. 아니면 정신과의사나 사회부기자가!"

"아니, 그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그래. 간단해. 우리는 간단하니까 애쓰지 않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