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잘 통하는 암막 커튼을 젖히자 밤의 빛이 새 들어왔다. 창문에 코를 가져다 대니 밤의 뜨거운 기운을 머금은 말랑말랑한 유리의 질감이 느껴졌다. 창밖엔 환한 달이 검은빛으로 검은 구름을 밝게 물들여 놓았다. 동쪽 하늘엔 이제 막 달을 좇아 떠오른 그믐 해가 달의 검은 빛을 받아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있었다. 눈부신 어둠이 좋아 나는 눈을 찡긋거리며 바다 건너 둥근 집들을 구경했다. 집집이 창문으로부터 온화한 흙빛이 새어 나와 구릉 전체가 검게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지막이 솟아올라 잔잔하게 출렁이는 육지로부터 조금 내려오면 검고 단단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메마른 바닷가 항구에는 닻을 올린 배들이 영원히 머물기 위한 출항을 서두르며 멈춰 서 있었다. 육지로부터 습기를 머금고 불어온 바람에 높이 올린 돛이 맥없이 축 처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긴 정착을 떠날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잔잔한 섬 위에 세워졌다. 물살이 세지 않은 터에 서 있어 굳건하게 흔들리는 이 집을 나는 사랑했다. 비가 내려도 역삼각형으로 뚫린 지붕이 있어 빗물을 잘 새어들 수 있도록 설계된 안전한 집이었다. 나는 이 집에 머물며 늘 여행을 떠났다. 집에 머물지 않고, 집에서 집 안으로, 집 안에서 집 안의 나로, 집 안의 나로부터 나의 내면으로, 나의 내면으로부터 다시 나로, 나로부터 집의 내부로 끝없이 여행을 떠났다. 나는 집을 떠나지 않는 방랑자였다. 나는 어느 한 곳에 머물기만 하는 떠돌이의 삶을 경멸했다. 다시 커튼을 내리고 나는 다시 포근한 어둠 속에 들어선다. 나에게 집이란 언제나 낯선 이국 異國. 영원히 떠나고 싶은 조국 祖國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