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밤

시인이 밤하늘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시인의 눈에 아무런 상도 맺히지 않는다

시인은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바라봄을 멈출 수 없다

바라볼 수 없는 시인은 바라봄을 당한다

밤하늘이 시인을 바라본다

시인을 바라보며 시인이 아닌 모든 것들을 바라본다

밤하늘은 모든 것을 바라본다

밤하늘은 바라봄을 멈출 수 없다

바라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을 때

시인의 눈이 열린다

밤하늘이 시인으로 새어든다

밤하늘로 시인이 새어 나간다

밤은 밤으로 시인을 적시고 시인은 시를 쓴다

시인이 대낮의 세계를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시인의 눈에 모든 사물이 들어와 맺힌다

시인은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다

바라봄을 멈출 수 없다

대낮의 세계가 시인을 바라본다

시인을 바라보며 시인이 아닌 모든 것이 시인을 바라본다

세계는 오직 시인 만을 바라본다

세계는 바라봄을 멈출 수 없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시인의 눈이 닫힌다

시인은 시인의 눈 안쪽에서 메마르고

세상은 시인의 눈 바깥에서 마른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