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빛

낯빛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늘 같은 낯을 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도무지 낯빛을 알 수 없는 이 아이를 두려워했다. 칭찬을 해 주어도 웃지 않고 혼을 내도 울지 않는 이 아이를 어른들은 부담스러워 했다. 또래 아이들은 자신들과 같이 마음을 낯빛으로 표현하지 않는 아이를 두려워했다. 그를 졸졸 따라오던 개도 아이의 빛깔 없는 낯을 보고는 깨갱 하며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아이는 주로 강가에 혼자 나가 시간을 보냈다. 물 위로 고개를 내미는 물고기들과 날아다니는 풀벌레들 만큼은 자신을 무서워하며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고기와 벌레들, 나무와 물과 하늘에는 낯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아이는 낯을 꾸미거나 낯을 가릴 필요가 없는 그 곳이 좋았다.

어느날 아이는 강가의 갈대숲 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햇빛에 번쩍이는 그 밝은 빛을 따라 가보니 바닥에 얼굴 모양의 거울이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그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기분이 좋았지만, 자신의 낯빛에는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이는 그 거울을 가면처럼 쓰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거울로 된 가면을 쓰고 집 밖을 나섰을 때 아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 마다 자신을 붙잡고 기분 좋게 웃어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이다. 지나가던 개도 아이의 얼굴을 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몇시간이고 슬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그를 왕처럼 따라다녔다. 하루아침에 동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아이는 저녁에 돌아와 가면을 벗어 보았다. 거울에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무슨 영문인가 하여 다시 거울을 쓰려고 보니, 반대쪽에도 거울이 있는 것 아닌가? 아이는 그제야 그날 벌어진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쁨에 찬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에서 자신과 같은 행복한 얼굴을 발견하고 더욱 기뻐했던 것이었고 슬픈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에 비쳐보이는 자신의 비통한 얼굴을 보며 속사정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보고싶어했던 얼굴을 보고는 좋아했던 것이다. 이게 다 거울 가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다시 강가에 가서 원래 그것이 있던 곳에 그것을 버렸다.

다음날 아침, 아이는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나가보니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어제 아이가 쓰고 나온 거울가면을 본 사람들이 죄다 거울을 깎아서 쓰고 나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아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이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자신과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 된 것을 보고는 놀라 뒷걸음질 쳤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이 예전처엄 웃거나 울지 않는 낯이 되어 버렸음을 알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혼자가 된 얼굴없는 아이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강가로 나갔다. 멀리서 동네를 바라보니, 태양 빛에 반사된 사람들 얼굴이 도처에서 번쩍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얼굴이 필요 없는 자연 속에서 다시금 평화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바람이 불지 않아 잔잔한 강물은 높아진 하늘을 파랗게 비추고 있었다. 아이는 가만히 고개를 내밀어 물 위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강물 위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