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구십육번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걸치고 있는 죄수복에 비해 몸이 왜소하여 그 모습이 더욱 초라하게 보였다. 하지만 책상으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보이는 그의 얼굴은 의외로 생기가 넘쳐 보였다. 광대뼈가 다 드러날 만큼 깡마른 얼굴이었지만 멀리에서도 매끈하게 보일만큼 피부결이 좋아 보였다. 깊이 패인 눈두덩이 안의 커다란 두 눈은 작지만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공중에 떠있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느릿느릿했다.
나는 그를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질문지를 검토하는 것처럼 서류들을 뒤적거렸다. 남자가 다가와 앉아 내 손 끝에서부터 손목, 어께, 그리고 얼굴까지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것이 느껴졌다. 취조실처럼 생긴 이 네모반듯한 면회실에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오직 정적 뿐이었다. 처음 몇 분 동안은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그 침묵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괜히 어설프게 떠본답시고 시답지 않은 말을 꺼냈다가는 오히려 무시당할 공산이 컸다. 사실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 지 막막하기도 했다. 나는 이미 이 노老수감자의 느리고 위엄 있는 태도와 눈빛에 압도되어 있었다.
사백구십육번은, 이 남자의 고유번호이다. 이 시설에 들어올 때 대부분 무작위의 번호를 부여받게 되지만, 그만이 특별히 이 번호를 요구했다고 원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496은 완전수이다, 아마도 고유 번호가 세 자릿수이다보니 그 숫자를 고른 듯하다. 조금 더 뜸을 들이다가, 왠지 초조한 기분이 들어, 볼펜 끝을 한 번, 두 번, 세 번을 나누어 튕겼다. 그리고 다시 탁, 탁탁, 탁탁탁탁, 탁탁탁탁탁탁탁 하고 소리를 내었다. 완전수 6과 28의 약수들이었다. 잠시 뒤 그가 책상 위의 열 손가락을 가볍게 펴고는 무심한 척,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하고 두드리며 화답했다. 그의 호감을 얻는데 성공한 것인가? 이윽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는 연구원이라지? 무슨 얘기를 듣자고 여기까지 찾아왔는가? 나는 면회를 받지 않는다고 원장에게 분명히 일러두었는데…”
“저는 선생님처럼 자발적으로 이 곳, 감옥.. 아니 시설에 들어오신 분들의 갱생을.. 그러니까 다시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지요. 원장님과 친분이 있어서 제가 특별히 선생님을 뵙게 해달라고 요청드렸지요.”
말한 그대로였다. 이 시설은 감옥처럼 생겼지만,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조합을 만들어 세운 수감 시설이었다. 말하자면 이 곳에 있는 죄수들은 각자가 세상 속에서 저질렀던 정신적, 윤리적 범죄를 스스로 속죄하기 위해 만든 자발적 감옥인 셈이었다. 일반적인 감옥처럼, 죄수들은 각자 독방 수감 생활을 하고, 세상과 접촉은 제한되어 있다. 제공되는 물품이나 음식의 질은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수감 시설처럼 그 종류가 한정되어있다. 죄수들 스스로가 감옥을 세운 설립자이기도 해서, 이 규칙들이 쉽게 무너질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규율들은 아주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제한없이 제공되는 물품은 서적이었다. 죄수들은 수감될 때 각자의 연구 주제를 정하게 되는데, 필요한 서적들은 연구 자료로서 언제든 요청할 수 있다. 이 감옥은 놀랍게도 매 해 죄수들이 발간한 서적들의 판매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요컨대 이곳 역시 수익을 내는 영리 시설이었다.
이런 식의 자립적인, 이른바 ‘자발적 감옥’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여러 특성화 감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정신적인 연구’에 특화되어 있었고, 자발적 감옥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곳이었다. 일종의 연구소나 종교 시설 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통 감옥이라 하면 혐오 시설이라 지역 사회로부터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는데, 이러한 자발적 감옥 시설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무심했다. 수감자들이 저질렀다고 하는 정신적 죄- 라는 것들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감자들 중에는 유명인들도 섞여 있어, 일부 주민들은 관광 효과를 기대한다고까지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는 경제 활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어 가뜩이나 인구절벽 현상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로서는 이들을 설득하여 다시 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이곳 수감자들을 인터뷰하고 그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곳에 왔다.
“자네는 우리가 왜 우리가 이곳을 설립하고, 왜 수감되어 있는지 모르는가? 돕는다니 무엇을 돕는다는 겐가? 갱생이라니? 이제 우리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들처럼 대하겠다는 겐가?”
“그건 오해이십니다. 저희는 선생님과 같은 존경받는 수감자 분들을 인터뷰 하고 세상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매해 중대한 연구 결과물을 만들어 내시는 분들을 정부에서 어찌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정부에서는 선생님들의 위대한 연구 성과물들이 단순히 서적으로만 출간되는 것에 아쉬워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 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또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 등을 통해 재소자 여러분들이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차원에서 돕는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미래 산업이라니.. 한심한 소리로군. 아직도 정신들을 못 차린 게야. 자네가 진정 이 나라를 걱정한다면, 자네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여기에 갇히는 편이 나을 것이네. 보나마나 뻔한 얘기지, 정부에서 일하는 놈들은 우리가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두려운 것일 게지.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가 누리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기 그지없는 수감 생활을 동경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네, 실제로 가벼운 경범죄를 저지르고는 제 발로 감옥행을 택한다지? 이게 다 그들이 자초한 일이라네. 고생해서 일 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경제 성장률이니 뭐니 하는 것도 개인의 행복과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지. 더 나은 세상이라는 것이 통계적 숫자 놀음과 경제적인 발전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나? 안그래도 내 연구가 어느정도 마무리 되어 이제 이 아름다운 수감 생활을 끝내고 나가볼까 생각 중 이었네만, 아직 멀었구만. 자네도 헛수고 하지 말고 이만 돌아가게.”
“세상은 선생님과 같은 현명한 분들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 일들이라는 것이 혼자서 이루는 정신적인 각성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얻은 깨달음을 들고 나와 사람들과 직접 문답을 나누며 그들을 깨우치려 했고, 싯다르타 역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들을 혼자만 음미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 생각을 나누고자 하였지요. 여기 계신 분들이 매년 훌륭한 책들을 출간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통찰과 영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바깥에는 무기력한 노인들만 넘쳐나고, 젊은이들은 세상과의 애착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참된 스승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이 책을 출간하시는 것 역시 결국엔 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함 아닙니까?”
“잘못 알고 있네. 우리는 붓다도 아니고 소크라테스도 아니라네. 우리가 책을 만드는 것은 이 아름다운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위한 것일 뿐, 그 책이 어떤 영향을 미치던 우리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네. 우리가 정신적인 연구 주제를 가지고 매일 노동하는 것은, 그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유희이기 때문이라네. 유희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유희 과정 자체가 정화 작용이고 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네. 우리의 죄목은 아무도 모른다네.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소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일종의 살아있는 법정이랄까. 유죄냐 무죄냐 하는 것을 밝혀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자가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낱낱이 밝혀 이해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소상하게 밝혀 이해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이지.” 하며 남자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하면서 그는 496의 약수인 숫자들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낮 동안의 노역 때문인지 손끝이 무척 두텁고 거칠었다.
이제까지 내가 들어왔던 자발적 감옥에 대한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부터 작가들이 온전히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를 임시적으로 가두었던 것처럼, 나는 이들 역시 단기간에 훌륭한 영구 성과를 내기 위해 일종의 간수와 죄수 놀이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자발적으로 갇힌 수감자들이 내는 책’이 불러 일으키는 호기심을 이용하려는 장삿속이 이들에게도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했더랬다. 나는 왠지 부끄럽고 숙연해져서,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일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내 날카롭기만 하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온화한 노인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스스로의 죄목을 알아내셨는지요?”
“나를 자꾸만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게. 나는 사백구십육번이라네. 허허. 자네도 알겠지만 496은 완전수이지. 자기 자신의 근원이 되는 약수들의 총합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완전 수. 내 죄목은… 인간이 있기 전부터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수학적 세계에서처럼, 나 자신도 역시 어떤 것들의 총합일 것이라는 착각하는 데에서부터 저지르게 되는 죄일세. 완전한 하나에 대한 집착. 하나와 둘, 그것의 종합으로서의 절대적인 셋에 대한 집착이라네. 마음이란 것은 논리적으로 수학적으로 체계를 세울 수 없는 불완전한 안개와 같은 것이라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나’라는 인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나는 무상한 ‘나’를 수립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왔다네. 그러한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죄를 짓게 된다네. 여기 있는 동료 수감자들 역시 비슷한 나와 죄를 지었지. 우리가 이곳에서 토론하고 연구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을 떠벌려 세상 사람들을 감화하려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우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를 격리시켰고, 그 안에서 우리만의 유희, 자신만의 구원을 이루려는 것 뿐이라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가 누리는 영리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