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그것은 지금껏 내가 살아오며 느꼈던 것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그 색다른 즐거움에 이끌려 무작정 걷다가 그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내가 늘 산책하던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완전히 태생부터 다른 종인 것처럼 친밀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믿고 있던 감각마저 의심하게 할 만큼 강력한 두려움이었다.

모퉁이마다 길게 자란 풀더미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아도 내가 살던 곳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같은 자리를 몇 번이고 맴돌았다. 가끔 집 앞에 물건을 내놓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이제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길 찾기를 포기하고 사람들 눈을 피해서 하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일어나 산책을 한다.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에 대해서 잊어버렸을 만큼 나는 오랜 시간 그 일을 반복해왔다. 목적 없는 그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나선 그 순간부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침에 문턱을 넘어설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멀리에 어렴풋이 보이는 커다랗고 빨간 무언가이다. 그것은 똑바로 바라보기 어려울 만큼 밝아서 늘 눈을 찡그리고 마는데, 나는 그것이 전해주는 따뜻한 온기를 좋아했다. 길에 나서면 숨을 들이쉴 때마다 풍겨오는 온갖 향기를 맡느라 나는 정신을 못 차린다. 나에겐 보는 것 못지않게 잘 발달한 후각이 있어서, 어쩌면 눈을 감고 익숙한 냄새만 쫓아다녀도 산책을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눈을 감는 편이 나에겐 더 편안하지만, 요즘 들어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거대하고 빠른 물체들이 많아져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땅속 깊은 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지독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덩치 큰 것만 아니면 내 산책길이 한결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인적이 드문 풀숲 가를 가로질러 산책하기를 더 좋아한다. 나무들이 흙 속에서 물을 빨아들일 때 나는 냄새며 가지에서 잎을 터질 때 나는 냄새 같은 것을 맡으며 행복한 기분을 느낀다. 때로는 산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곳에는 내 코를 자극하는 냄새들로 가득해, 아마도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산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편으로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길이 이어져 있고, 그곳에는 늘 빨갛고 뾰족한 것이 서 있다. 나는 그 빨갛고 뾰족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오늘도 그 앞에서 서성이며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소변을 보았다. 그 행위는 내가 항상 같은 집에서 같은 시각에 밥을 먹고, 꼭 같은 이불 위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나 아침 산책길에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모든 반복적인 일과가 내게 꼭 같은 만큼의 기쁨을 준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든 일과가 모두 틀어져 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세워 둔 그 뾰족한 모양의 물체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웬일인지 나는 그 원뿔 모양의 물건의 쓰임이 궁금해졌던 것이다. 사람들 사는 곳으로 뻗은 길에, 그와 같이 생긴 빨간 것이 계속 서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때부터 그 뾰족한 것들을 눈으로 하나 둘 세며 지나가고 그것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어떤 사람이 그 원뿔 모양의 물건을 들고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동안 관찰하고 있는데, 고깔이 원래 있던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다시 세워놓지 않겠는가. 그리고 고깔이 없어진 자리에는 내가 싫어하는 그 위협적인 덩치가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고깔이 있던 자리에는 내가 싫어하는 그 큰 것이 기어들어 오는 것이구나. 나는 순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고깔들 주변을 살피며 그와 같은 일들이 또 한 번 벌어지는지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러자 여지없이 고깔이 없어진 자리로 그 묵직한 것들이 조용히 들어와서는 멈춰 서는 것이 아닌가! 멈춰 선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잠든 게 틀림없었다. 고깔이 있던 자리는 저 두려운 존재들이 잠자는 곳이라는 두 번째 깨달음. 나는 기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렸다. 이제 저 커다란 물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된 것이다. 지금까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느낄 수 있었던 기쁨과는 또 다른 행복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가 고파 아무 것이든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몇몇 가게 주인은 먹다 남은 음식을 내게 던져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몽둥이를 들고 휘둘러대는 통에 먹던 것을 재빨리 물고 도망쳐야 했다. 가끔가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의 향기를 맛본 듯하여, 사람들 사이로 미친 듯이 헤집고 달려보기도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걸을 기력도 없어 멈춰선 곳은 웬 언덕 끝이었다. 언덕 너머에는 무언가가 산 위에 걸려 있었다. 작은 딱정벌레의 등에 난 점처럼, 동그랗고 빨간 것이 멈춰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점차 번지고 있었다. 차가워졌던 몸이 다시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매일 아침 산책을 나설 때 문턱 너머 보았던 그 밝고 따뜻한 무엇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이 동그랗고 빨간 것은 아침에 우리 집 문앞의 산에서 솟아나, 저 산 뒤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이 동그랗고 빨간 것 때문에 하늘이 밝아지고 또 어두워지는 것이며, 아침이면 따뜻해졌던 거리가 저녁에는 차가워진다는 사실을!

그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면 집을 찾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아온 모든 생의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던 이 거대한 규칙들을 알아버리게 된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내 하루를 밝혀주고, 내게 생명에 온기를 전해주는 이 거대한 존재 앞에서 나는 두려움이 아닌 거대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나도 모르게 산 너머 사라지는 동그랗고 붉은 존재의 냄새 맡고 싶어 코를 가져다 댔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것으로부터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트! 칸트!”

사실 목소리가 들려오기 이전부터 나는 주인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디 갔었니! 온종일 찾았잖아!”

주인은 나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주인의 옷에서 나는 익숙한 냄새에, 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혀로 그의 귀를 핥으며, 빨갛고 동그란 그것이 사라진 하늘 위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