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업

“이 작업은 불쾌해. 이건 불쾌의 쾌야. 나는 네가 이 불쾌를 어떻게 아름다움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지 궁금해.”

“맞아요. 제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해요. 니 작업 진짜 기분 나쁘고 우울하니 그만하라고.”

“그런 얘기를 듣고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뭐야? 그래도 괜찮아?”

“네, 저는 제 작업이 좋다고 믿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해서 눌러주는 ‘좋아요’ 숫자에 저도 모르게 연연하게 되더라고요. 이를테면, 제 작업물 사진에 붙는 좋아요 숫자보다, 음식 사진에 붙는 좋아요 숫자가 더 높을 때?”

“나는 그게 궁금했어. 네가 네 작품이 정말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고 말해주어서 좋은 것인지. 남들이 좋아하지 않아도 너는 그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네, 저는 제 작품이 좋아요. 이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좋다고 믿는 것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네 작품에 대해 무어라 얘기하든 상관없잖아. 그냥 좋다고 말해. 네 작업이 좋다고. 나는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어.”

“형에게 저는 뭘까요. 같이 작업하는 동료일까요? 아니면 후배?”

“나는 동료라고 생각해. 하지만 네가 마치 확신이 없는 듯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에 관해 뭔가 조언해주고 싶은 거잖아. 넌 그냥 그런 따뜻한 조언을 듣고싶을 뿐인 건 아닐까?”

“형은…… 진리가 있다고 믿으세요?”

“글쎄… 없다고 생각해. 동양적인 진리로서 모든 것이 다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라는 말이 진리라고는 생각해, 하긴 서양에서도 그 뭐냐, 모든 것은 변한다고 했던 그 사람도 있구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건… 뭐랄까 반칙 같아. 사실 세상의 모든 논의는 작가 믿는 진리-라는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엎치락뒤치락 발전해 왔으니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건 너무 속 편한 얘기같아.”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그래서 너는 네가 아름답다고 믿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는 거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가 정말 진리라고 믿는 게 있다면, 그 생각을 죽을 때까지 밀어 붙여야 된다고. 애초에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말 생각이면서도, 그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도 마치 고결한 듯, 자기 지금 생각이 진리인 양 말하는 건 비겁한 것 아닐까. 나 역시 고결한 듯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속된 부분 역시 인정해. 네가 고결한 얘기를 하면 나는 속된 사람이 되어버리는 셈이잖아…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괜히 에둘러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네 어쩌네 말 할 필요 없지 않을까. 자기의 투사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싶은 것 뿐이지. 애초에 옳다고 믿는 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뭐가 중요해.”

“맞아요. 이건 확실해요. 저는 제 작업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