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변호사 J 씨에게 일어난 일

아침에 눈을 뜬 변호사 J 씨는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참은 있어야 할 만큼 머리가 죄어오는 통증을 느꼈다. 전날 과음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가올 대형 재판을 준비하느라 수백 장의 서류를 검토하고 분류해야만 했다. 침대 밖으로 떨어지다시피 기어 나와 우선 냉수를 한 잔 들이켰다. 샤워를 하고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 뭉치들을 탁탁 정리하여 가죽 가방에 챙겨 넣었다. 법원에 오늘까지 제출해야 할 의료소송 건에 대한 기일 연기신청서를 찾는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J는 무의식적으로 침대맡에 둔 안경을 찾았다. 하지만 그 안경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안경은 이미 코 위에 얌전히 걸려 있었다. 다시 가방 안의 서류들을 꺼내 하나씩 살펴보았다.

‘공정신고… 자동차… 접수…’

두꺼운 서체로 쓰인 제목을 아무리 읽으려 해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눈이 더 나빠졌나…’

포기하고 책상 위에 보이는 흰색 서류란 서류는 모두 가방에 챙겨 넣고 오피스텔을 나왔다. 기일 연기신청서는 상대 변호사가 제출할 테고 동의만 해주면 되는 일이니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주말부터 작성하던 신체보완감정신청서도 확실히 챙겼는지 확신이 안 섰다. 국내 대형 자동차 제조업체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신고하는 중요한 서류이기에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무실에 도착하기 전,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건설사 구내식당에 먼저 들렀다. 구내식당이긴 하지만 음식 맛이 괜찮았다. 매주 새로운 식단을 짜서 한두 가지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북엇국을 먹을 것인가 제육 덮밥을 먹을 것인가, 돈가스를 먹을 것인가 된장찌개를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이 그의 하루 중 몇 안 되는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가 주문할 차례가 되어, 식권을 파는 곳에 붙어있는 메뉴를 살펴보았다.

‘김… 육… 찌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메뉴판 앞에 이마를 들이대고 아무리 읽어보려 해도 당최 읽어낼 수가 없었다.

J 씨를 뒤따르던 사람들이 짜증스러운 듯 헛기침을 해대는 통에, 그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아무것이나 달라고 했다. 결국, 고른 메뉴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회덮밥이었다. 아직 냉동상태에서 덜 녹아 허연 고무 쪼가리 같은 참치를 대충 씹어 넘기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급히 식판을 반납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초복이 가까이 다가온 터라, 아침 아홉 시인데도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지하 식당에서 빠져나온 그는 정신없이 출근하는 인파와 아스 팔트에서 전해져오는 후끈한 열기, 자동차 매연, 건물마다 지저분하게 매달려 있는 전깃줄과 간판들을 아연히 바라보았다. 형형색색 각기 다른 나라의 언어로 씌어있는 간판들이 호객꾼처럼 다가와 눈앞에 아른거리며 그를 착란케 했다.

‘소공… 치… 의원… 2F… 고기… 금지… Nort..’

하나의 단어를 읽으려 집중하면 다른 간판의 글자들이 경쟁하듯 날아와 해독을 방해했다. J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리고 셔츠 안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까막눈이 되어버린 듯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와 같은 증상을 말하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려 애를 썼지만, ‘난독증’이라는 말을 의식하는 순간 글자들이 상상 속에서마저 뒤죽박죽 자리를 바꿔가며 기억을 방해하는 듯했다. 난독증을 넘어 난상증 難想症 이라 해야 할까. 그는 도망치는 글자들을 붙잡는 심정으로 떠올린 말을 하나씩 힘주어 소리 내 읽었다.

‘나… 난!… 도… 도… 독! ㅈ… 즈 으…. 즈 증!’

그 소리에 놀란 행인들이 그를 지나치며 아래위를 흘기듯 보았다. J는 절망했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머릿속에 단어들을 나열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감기약을 사먹고,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난독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하는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J는 일단 사무실에 것이 가는 생각 좋겠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눈고감도 찾아 수 갈 있는 길이 갑자기 막막하게 느껴졌다. 사무실을 찾아가는 순서마들저 뒤박죽죽 자리를 바꾸버어려 발음걸을 떼어놓을 수조차 없었다. 그는 마치 고장 난 기처계럼 행인들 사이에 서 멈춰 있었다. 출구로 1번 내려가서… 더플라자 다음 방향 시청 꺾어져… 계단… 해야했다. J는 머속릿이 그의 느꼈다 것을 그는 말았다 하얗게.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