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이 벌레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여 년 전입니다.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날, 나의 부모님과 함께 물놀이를 갔던 곳에서 처음 이 벌레들을 만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 조그마한 생명체들이 무리지어, 또는 홀로 돌아다니며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했지요. 그렇게 짓궂게 벌레들과 장난치던 수준에서 전문적으로 이 벌레들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로 접어든지도 어언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물이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건 이 곤충들을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벌레에 대한 저의 연구 결과를 이 자리를 빌어 조금이나마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벌레는 주로 강가에 서식하며 군을 이루어 살아갑니다. 어떤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만, 서로 협동하여 주변의 자원을 이용해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고도로 사회적인 동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적응력이 대단히 뛰어나서 열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에 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몸은 좌우대칭으로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고 껍질은 엘라스틴1) 성분으로 구성되어있어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가슴과 위쪽과 배 하단에 한 쌍 씩, 총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요, 앞다리는 주로 도구를 다루거나 먹이를 채집하기 위해 사용하고 뒷다리는 주로 이동하는데에 사용합니다. 머리 위쪽에는 섬모가 자라나 있고 전면에 안점과 후두 감각기관, 그리고 저작기2) 가 있습니다. 가슴 안쪽에는 호흡기와 소화 기관이 위치해 있고 배설물은 꽁무니 쪽 외부로 난 배설공에서 배출됩니다. 암수 생식기는 뒷다리 사이 배설공 위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벌레에 대해 알려진 상식은 이 정도입니다.
홀로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는 연구에는 한계가 있어, 저는 얼마 전부터는 이 벌레에 대해 관심이 있는 다른 벌레학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른 많은 연구자들은 주로 이 생명체의 놀라운 적응 능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들의 연구는 이 벌레들이 이용하는 자원을 인위적으로 고갈시켜 본다거나, 물의 양, 기온 등의 생태 조건들을 변화 시켜가며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관찰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저는 좀 더 미시적인 연구 방법을 선호하는 편이라, 무리 보다는 각 개체들의 습성을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한 마리 한 마리를 지정해놓고 관찰하는 식의 표적 연구를 진행하고있지요. 이 벌레의 일생은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도 짧아서 얼핏 보면 그들의 일생이라는 것이, 오직 번식에만 목적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의 표적연구를 통해 관찰해보면 그들의 삶에도 굉장히 복잡다단한 굴곡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 벌레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번식하는 지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하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들의 번식 그 자체가 굉장한 미스테리였지요. 하지만 최근 들어 아주 작은 공간 속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초미세 광학장비들의 발달하면서 이제 우리는 이 벌레들이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어둠 속에서, 그것도 아주 작은 그들만의 구멍 속에서만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짝짓기를 끝낸답니다! 이 벌레들은 작은 구멍 안에 이것 저것 외부에서 주워 온 것들을 쌓아놓는 것을 좋아하는데, 짝짓기나 무언가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주로 수집해 온 물건들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그 앞에 가만히 앉아 있곤 한답니다. 어떤 연구자는 이 벌레들이 밖에서 주워온 것들을 감상하고 심지어 이들만의 종교가 있을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재고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일 뿐입니다. 이 벌레들의 사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좀 더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 믿습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구멍 속 생활과 함께 또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야외 활동에서 보이는 이상 행동들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는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이 벌레들이 서로 마주쳤을 때 아주 낮은 주파수의 소리가 난다는 어떤 연구가의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들에게 고도의 언어 체계가 있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제 생각엔, 신빙성이 아주 낮은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 벌레들은 낮 동안 분주하게 어디론가 이동하는데, 이들이 무엇을 위해 이동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딱히 먹이를 채집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 같다가도 일시적으로 어딘가에 모여 앉아 있거나 하기 일쑤이지요. 이들이 한군데에 일렬로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전달받기 위함이거나 감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들이 먹이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이런 집단 행동을 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답니다. 이들은 또한 일시에 어느 곳에 모여 서로를 죽이기도 하는데 서로 다른 집단 간의 다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역시 흥미로운 연구 과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최근 들어 이들 벌레들이 스스로 죽는 경우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먹이의 고갈이나, 늙어 죽는 것이 아닌데, 별다른 이유 없이 많은 개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다른 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러한 기이한 현상 때문에 ‘자살 현상’이 이 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벌레 종의 공식적인 학명에 자살을 뜻하는 라틴어 sui-cidium 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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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벌레의 이름을 제가 깜빡했군요. 이 벌레의 정확한 생물학적 계통과 그 학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핵생물역-동물계-진정후생동물아계-후구동물상문-척삭동물문-척추동물아문-유악하문-사지상강-포유강-수아강-진수하강-영장상목-영장목-직비원아목-원숭이하목-협비원소목-사람상과-사람과-사람아과-사람족-사람아족-사람속의 <호모 사피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