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 여자가 소리쳤다. 그녀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축축한 느낌이었지만 커다란 식탁과 의자는 아주 단단하게 잘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커다란 홀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시차를 두고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하늘 위로 커다란 구멍이 나 있는 것처럼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구멍으로부터 아주 드물게 빛이 새어 들어오기도 했는데, 어둠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그 빛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다만 무언가 밝은 빛의 출렁거림 사이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넓은 방 안을 몇 번 메아리 치다 어딘가 뚫려있는 공간을 통해 새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 방 바깥으로 기다란 복도가 이어져 있고 그 복도 끝에는 어딘가 다른 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확신했다. 아마도 그 계단 끝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으리라.
이곳을 탈출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먼저 묶여있는 사슬을 풀어야 했다. 그녀는 이미 이 어둡고 축축한 공간에 익숙해져 있었다. ‘도대체 누가 나를 이곳에 가두었을까?’하는 의문으로 세월을 보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마저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 기억을 더듬어 이곳이 아닌 곳을 떠올려보려 해보아도 다른 기억은 없었다. 그녀는 매일 이렇게 어둠 속에 묶인 채 앉아 있다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조금 전의 비명과도 같은 그 말을 내뱉곤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아까 그 소리를 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소진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눈을 감고 자신의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을 듣고 있었다. 아까의 그 목소리는 벽을 뚫고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 지붕에까지 울려 퍼져 나가며 점차 의미를 알 수 없는 웅얼거림으로 변해갔다. 비를 잔뜩 머금은 한여름 먹구름이 우르릉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바짝 마른 소나무가 바람에 온몸을 비틀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기차가 떠나간 뒤 한참 후에도 철길에 귀를 갖다 대면 어렴풋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여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멀어져감을 아쉬워하며 책상 위에 귀를 갖다 대고 엎드린 채 앉아 있었다.
그때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아마도 머리 위 빛이 새어 나오던 그 구멍에서 들어온 공기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역시나 밝은 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깨끗한 도자기 그릇과 은빛 포크나 나이프들이 부딪칠 때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드디어 자신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아 소원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벅찬 마음에 그녀는 빛을 행해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눈이 부셔 제대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빛으로부터 무언가 아름다운 형상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려고 한 손을 이마에 두고 빛을 조금씩 가려보려 했지만, 여전히 그 빛은 너무나 강했다. 빛 너머에서 내려온 그 형상은 처음엔 산처럼 거대한 모습이었다가, 다음엔 큰 바위들로, 나중엔 주먹 만 한 돌들로 쪼개어져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 육중한 돌무더기에 맞아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여자는 더는 먹을 것을 달라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동안 그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주 거대한 고구마 조각, 주먹만 한 밥알, 그리고 팔뚝만 한 밀가루 면들이 자신의 몸을 온통 휘감고 짓누르고 있는 꿈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녀는 잘 익은 고구마의 속살을 핥았고, 밀가루 면을 조금씩 씹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