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안 되겠어

—하고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라는 말은 남자가 박차고 일어서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진다. 일어선 남자는 뒤를 돌아 자신이 내뱉은 말들을 무심히 바라본다.

‘아무래도’ 라는 낱말은 ‘아무리’와 ‘해도’라는 낱말들로 해체되었다. ‘아무리’라는 부사는 그 정도를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없기에 애초에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듯 스르륵 사라져 버렸고. ‘해도’는 ‘했는데도’와 ‘하는데도’, ‘할 것인데도’ 처럼 각자 다른 시간의 축으로 깨어져 희미하게 하소연하듯 사라져갔다.

하지만 ‘안 되겠어’라는 말은 웬일인지 침대 위에 그대로 남아 눈을 부릅뜨고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애초에 ‘아무래도’라는 변명은 필요치 않았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그에게 합당한 답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남자는 ‘안 되겠어’의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푸른 빛이 감도는 창가로 가 창밖을 응시했다.

혼자 남은 ‘안 되겠어’는 생각했다. 남자는 도대체 무얼 믿고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그가 창밖에서 마주하고 있는 저 유약하고 착해빠진, ‘다 잘 될 거야’ 따위가 하는 말들이 감언이설일 뿐이라는 걸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그걸 믿는다고? ‘안 되겠어’는 남자를 자기 쪽으로 돌려세워 다시 침대에 눕히고만 싶었다. 창밖의 풍경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다 허상일 뿐이라고, 언제나 변하고 언제고 사라질 것들뿐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만이 현실적이고 나만이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노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의 입을 통해 다시 한번, “네가 옳아. 아무래도 안 되겠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말을 그에게 해 줄 작정이었다. “그래. 다 잘 될 거야.”

한편, 창가에 선 남자는 생각했다. ‘잘 될 거야라’던가 ‘안 되겠어’라던가 하는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 말들이야말로 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악惡이라고.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자, 그는 자기 삶이 더는 ‘말’로 사유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렸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