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났다. 내가 인생의 패배자라고 여기고 있었던 사람으로 부터. 그로부터 혼이 났기 때문에 그가 패배자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그는 나에게,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자> 라는 슬로건을 제시해 주는 듯 살고 있었고, 그 것을 위한 훌륭한 표상으로서,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주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어느날 <너의 삶은 틀렸다, 모두가 그런 너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다> 라는 고약한 이야기를 전격발표 수준의 목소리로 들려준 것이다. 표상으로서의 역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나보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자신이 것이 아닌 생에 대해서 잘못 되었다고 단죄하고 꾸짖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가 나의 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면서, 정말 잘도 말한다. 아마도 내가 한 평생 살고 난 후, 인생을 후회하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아마도 <어떡하죠? 전 인생을 잘못살았어요, 그 때 당신 말을 들었어야 하는건데>라는 고백을 듣고 싶은 것이겠지. 아니면, 한 오십년 뒤에, 내가 그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얘기한다면 그는 뭐라고 할까? <당신 말대로 나의 생 방식을 바꾸었더니 행복하지 않더군요. 그러니 기만 당한 내 생을 돌려주시오. 당장!>
그의 말에서, 그가 자신의 삶을 살며 사회적인 규범이나 일반적으로 얘기 되어지는 도덕률과 절대 선 이라고 통용 되는 가치들에 대해서 신앙 처럼 믿고, 복종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하지만 그가 치명적인 악취를 풍기는 대목은, 자신이 신봉하는 그 숭고한 계율과 지침들을 이야기 할 때에, 그 말 자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권위와 존엄성을 마치 즉석에서 모조리 획득 했다고 착각하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돌변하는 부분이다. 혼자서 썩고 곪는건 좋은데 그 냄새나는 입으로 <니가 아직 어려서 그래> 따위의 얘기는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의 부도덕함이, 나의 나태함이, 나의 목적 없음과 계획 없음이 마치 자신이 속한 세계의 성스러움과 고결함에 한점의 불순물이라도 된다는 양 이야기하는 꼴이란... 나 따위가 그의 신앙심과 당신의 그 고결한 가치체계를 전복시킬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제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는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가치들은 이미 고래로 너무 너저분하게 많이 이야기 되어져서 특별히 그가 친절히 이야기 해준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다는 사실을. 미안한 이야기지만 내가 듣기엔, 이미 너무 많이 <나 다운>것을 포기해야 했던 세월에 대한 열등감이고, 자신이 그 동안 받아들이기만 했던 그 가치들의 바짓가랭이라도 꽉 움켜쥐지 않으면 설 곳이 없어서 두려움에 떨 때에 내는 소리이다. <너, 우리 아빠가 얼마나 힘이 센줄 모르지?>의 심보랄까.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을 쳐부수기에 그것들은 이미 너무나 완고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이 전복되기 위해서는 수 세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 가치들에 반기를 드는 것 보다,
그 권위 위에 슬쩍 올라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내가 시험하고 있는 모든 가치들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평생을 두고
후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뭔가 착각하고 있다. 내가 지탄을 받고 비난 받길 원한다면, 날 탓할 것이 아니라, 나 같은 녀석이 도태 되지 않고, 오히려 어떨 때에는 환영 받기까지 하는 그 시스템을 탓해라. 아니면 내 올바르고 행복한 생을 위해 매달 기부금을 내시던가.
너무 애 처럼 징징거렸나? 누가 보면 살인이라도 저지른 줄 알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