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마음을 먹은 후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무엇인가 커다란 의미를 깨닫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다음 문장을 이어가기만 하면 나는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서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기록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며, 내가 그것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마치 사막 위를 날던 굶주린 독수리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발견하고는 그의 주위를 맴돌며 날것의 은은한 향기를 만끽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한동안 아버지의 일터에서 고철을 꽝꽝 던질 때에도, 햇볕이 좋은 날 아무 생각없이 버스에 앉아 있을 때에도, 이름모를 감독의 오래된 영화를 몇 편 씩 감상 할 때에도, 오랫만에 동기들과 만나 술자리를 할 때에도 하나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 하나의 이미지가 내게 의문을 줄 것이고, 의미를 줄 것이고, 그럴싸한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그 이미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아침 아버지의 입관을 치르던 날의 이미지를.
그 날 우리는 두 명의 염사원들이 시체검안소 한켠에서 노련한 솜씨로 아버지에게 고운 황금빛 수의를 입혀드리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축 쳐진 팔이 그들이 움직이는대로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것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수의를 입히는 일이 끝나자 염사원들은 우리들에게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한번씩 만져 보라고 권했고, 아버지의 주위를 차례차례 돌며 어머니와 형, 누나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나는 그 때 가만히 아버지의 감은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들 염사원들이 혹시 내게 '눈 앞에 존재하는 그 몸이 곧 죽음입니다' 라고 말한 것인가, 아니면 '자 여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죽음이 있으니 한번 만져보세요.' 라고 말한 것은 아닌가 하고. 나는 '죽음'이라는 관념을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하마터면 실소를 할 뻔 했다. '나'라는 세계가 뒤엉키는것만 같았고 곧장 머리가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 날의 이미지에 관해서, 그 '만질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해서 무엇이든 쓰고 싶었다. 나는 그 날의 슬픔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것은 내게 너무도 커다란 슬픔이어서, 슬픔의 척도는 무엇인가를 대해 이야기하던 나는, 비장함을 획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골몰하던 나는, 그 생경한 슬픔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노라고. 그리고 나는 그 날 마주친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관념은 마치 그날 아버지의 축 쳐진 팔처럼 소름끼치도록 차갑고 무거운 것이어서 그 것은 만질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노라고.
나는 의욕적으로 텍스트 파일들을 생성해 나갔다. 슬픔을 느낄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가,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에 대해서, 또 갑자기 허무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글은 조악한 문장들로 지저분해 졌고, 글 속의 화자는 강박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처럼 추하게 변해갔다. 굶주린 독수리는 어느새 시체 위에 내려앉아 머리를 처박고 열심히 살점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에서야 간신히 그 지독한 허영이라는 이름의 독수리들을 내 쫒고, 아버지에게 다시 멋진 황금빛 수의를 입히고 향불을 피우기로 한다.
나는 맨 처음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래서 나는 많이 슬펐다.' 라는 문장으로 끝맺음을 했어야 했다. 그리고 좀 더 많이 울고 위로 받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