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새벽, 집앞에 이르러 잔뜩 취해있던 나는 왜 이유없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을까. 모르겠다. 살다- 라는 것은 살고있는 순간순간이 모두 다 리얼- 일것만 같지만, 사실 정말로 실감나는 생- 이라는 것은 감지할수 없는게 아닐까. 계속 걷고있을때에도 걷다-라는것을 새삼 느껴본적 없는것처럼. 어떤 사람처럼 눈꺼풀 위에다가 문신을 해보는건 어떨까. 아프지않다면 '깜빡' 이라고 적어달라고 해야지.
술자리에서 말이 많아졌다.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들이 숨김없이 들춰지는것 같아서 창피한 일이다. 한번 터진 입에서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려도 잠겨지지않고 계속해서 뭔가가 무례하게 사방으로 튀기며 쏟아져나오지만, 그 것은 별로 상쾌하거나 신선하지도 않다. 크리스마스에서 와인을 세병쯤 마시고나서 앞에앉은 사람에게 혹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느냐고 무심코 물었는데, 그는 사실 게이였다. 젠더가 문제겠는가, 인간을 사랑할수 있는가? 가 문제겠지.
꿈에서 만난 아버지는 늙고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머리카락은 건강한 청년처럼 자라있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며 삼개월동안 한번도 씻지못하셨다고 하셨고, 나는 목욕물을 준비해드리겠다고 하며 그 방에서 나왔지만 결국 꿈에서 깨어나버렸다. 우리는 이른 장마가 시작되기전에 아버지 묘소에 가보기로 했지만, 나는 일이 있어 갈수없게되었다. 갑자기 그것과는 상관없이 인류학관련 서적들을 읽어보고싶어졌다.
늦은 오후까지 이불속에 누워있어도 부끄럽지 않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도 반갑거나 기대되지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보고싶은 사람이 있지만 사실은 보고싶지 않은 그런것과 비슷한 현상일까. 생활이 무기력해지면 조금은 다짐같은것을 해봐야 하지 않나- 사는것이 무료해지고 답답해지면 뭔가 새로운 것들을 기대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만을 하고있다. 예전처럼 왜 이렇게 되었는가? 라고 묻지도 않는 나는- 나에게조차 무관심해진게 아닐까.
장면들 속에서 허락없이 빠져나온것같은 기분이랄까. 사실 던져져있지도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