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한동안 이사가는 일에 열중하고 계셨다. 그리고 결국엔 당신이 원하시던대로 누군가에게 집을 내놓고 이사를 가게되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이 무의미한 이사계획을 말리고 싶었지만, 문득-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으면 어떤가- 하고. 특별한 이유는 반대할 수 있는 여지라도 가질수 있게하지만, 아무 이유도 없다는 것에는 아무런 대답도 불평도 소용없지 않은가. 가야되니까- 가야되니까- 라는 말만 되풀이하고나서 나도 결국 독일에 갔던것 아닌가. 그런식의 무모함. 즉, 이드가 원하는 것에 손을들어주고 그것에 순순히 복종할수 있는, 그런 기질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던가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이드- 자아- 초자아- 라는식의 사변적 개념들이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것이라면, 나의 경우- 초자아는, 그가 가지고있던 중대한 현실계의 권한 대부분을 이미- 이드에게 빼앗겨버린것같다. 그 이드는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게으른것조차 옳다- 라고. 하지만 늘 충족된 이드는 어떤 것에도 책임지기 싫다는 태도로 뻔뻔하게 들어누워버린다. 그것이. 문제이다. 위축된 초자아를 부축하고 일으켜 세워야 함이 마땅하지만. 무슨 근거로, 어떤 체계로 그것을 구축해야한다는 말인가. 아버지의 멘탈리티를 다시 습득할만큼 나는 천진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