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 동선


제6열람실 좌석 227번*

Meiner Weisheit A und O Klang mir hier:
was hoere ich doch! Jetzo klingt mir's nicht mehr so,
Nur das ew'ge Ah! und oh! Meiner Jugend hoer ich noch.
젊은날 가졌던 지혜의 알파와 오메가를 나는 여기에서 다시 듣는다.
그러나 무엇을 들어왔던가? 지혜의 말보다는 고뇌의 말:
내 귀에 이해되는 것은 우리 청춘의 끝없는 <아아!>와 <오오>뿐.

이런 번역은, 마음에 든다. 청춘의 끝없는 <아아!>와 <오오>뿐이라니 아아! 니체는, 그렇게 많은 양의 글을 써야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문학적 욕심이랄까, 감동적이고 찬란한 미사여구가 생각하기를 방해한다. 그 누구보다도 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자가, 당대 그리스도교도들의 신앙이나 숭배에 대해서는 성토하면서도, 그 스스로의 사상에 대해서는 미래의 눈먼 독자들에게 신앙이 되어도 상관없다는듯, 알면서도 모른척. 그런 태도는 못마땅하다. 못마땅해도 할수없지. 그래도 아아! 레클람에서 나온 문고판 니체를 사가지고 올껄 그랬나.

학관에서 정문쪽으로*

샤프심의 진하기가 마음에 안들어서, 짐을싸서 도서관을 나온다.
학생회관 건물 여기저기 각종 동아리 홍보물이 붙어있다.
'숨겨진 열정을 찾아드립니다 - 대학창작음악동아리.'
'유럽 배낭여행 50만원! - 홍대배낭여행'
'순수한 영혼을 가진 당신! 글샘동아리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정문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괜히 바닥에 그어진 화살표를 따라 운동장으로 내려간다. 미식축구를 연습하는 덩치큰 녀석들의 구호소리 하인즈워드가 한번 다녀갔다고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유세라도 부리는건가. 정문 공사 때문에 초등학교 앞으로 옮겨진 농구장에서 과-대항전이라도 하는지 함성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열람실에서 들리던 소리가 저것이었군.

다시, 정문을 지나 신호등 앞. 건너편에 서있는 침착한 표정의 여자아이. 피트한 스키니-진, 아무것도 프린팅되어있지 않은 회색 티셔츠를 입었다. 그저 아무 무늬없는 회색티셔츠 라는것만으로도 주목해야할 그 아이는 천연덕스럽게도 순간, 작은 입을 벌려 하품하였다.

9600 좌석버스*

베르그송의 이마주- 를 이해한답시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뜬다. 그것을 꽤나 진지하게 반복하고 있을즈음 갑자기 내가 앉은 좌석으로 왠 낯선 녀석이 고개를 내민다. 무슨일인가 하고 황급히 이어폰을 귀에서 뽑았는데, 내 뒷자리에 앉았던 그 녀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머리위에 붙어있는 노선표를 뚤어져라 쳐다보고있었다.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대프트펑크 face to face. 로멘소니의 섹시한 목소리는 도무지 질리지도 않는다.

이번엔 에드문트 후썰- 그가 질문한다. <타자속에도 과연 의식이 있는가?> 흥미롭지 않은가. 98년도인가, 미술학원을 다닐적에도 한번,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맨 뒷자리에 앉아서 그런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내 옆에 앉아있는 이녀석에게도 나와 같은 의식이 있다니, 믿을수 없어! 라고 현상학적으로만 해석하자면 의미적 세계를 명료하게 파악하는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정말- 너는 없는지도 몰라. 훗. 아- 그러고보니 웨이킹 라이프에서도 잠깐 이런 대사가 등장했었지. 잠이 덜깬 제임스가 귀찮다는듯 돌아누우며 셀린느에게 이렇게말했었잖아.
maybe I only exist in your mind.
I'm still just as real as anything else.

신촌역즈음에서였을까, 갑자기 내뒤에 앉았던 그녀석들이 버스를 멈춰세우고 황급히 뛰어내린다. 어어- 가만있자, 지난번에도 분명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연인이 꼭 같은자리에서 버스를 멈춰세우고 뛰어내렸었는데-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그녀석들을 가만히 지켜봤었더랬는데-

그리고, 집*

연애시대를 보다.
이런 재미난 각본을 써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