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이름을 묻고, 학번을 묻고, 사는 곳을 묻고, 가족관계를 묻고, 좀 더 할말이 없어지면 장래희망 따위를 묻기도 한다. 정말 쓸데없는 질문들이다. 내가 정말 물어보고 싶은건 어쩌면, 잠자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꿈 속에서 깨어나 본 적이 있는지, 아무것도 안하고도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하는 것들. 그런데도 계속 나는 이름을 묻고, 사는 곳을 묻고, 가족관계를 묻고. 어휴 정말 멍청해. 사실은 그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지도. 그래서인지도 몰라.
창문을 열어놓은채 비워둔 방안으로 문을열고 들어올때면, 방 안 가득 들어 차 있는 차가운 공기와 함께 담배냄새가 조금 나는데, 나는 그 때마다 작년 겨울을 보냈던 라이프치히의 기숙사 방을 떠올린다. 계절에 대한 감각, 세월에 대한 감각은 달력의 숫자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아마도 그런 것인가보다. 냄새나 촉각 따위의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지금의 내가 느끼고 있는것이 사뭇 다를 때에 느껴지는 그런 것. 그런 차이.
외로움이나. 그리움이나 하는 것들. 혹은 생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 불만들. 그런것들이 잠잠- 하다. 불안하게. 근데 그래서 쓰고싶은 것이 없는가보다.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언젠가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누군가를 향한 흠모. 혹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적 부채, 미안함. 혹은 누군가를 향한 분노, 서운함. 같은 것들이 비로소, 비로소 해소되고, 고갈되고,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비워진 결과로 어떤 안정, 여유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기 빈자리에 남은건, 거대하게 입을 벌린채 하품하고있는 무료함.
이사를 온 이후, 방안에 누워서, 창밖의 소음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보면, 창 밖, 큰 길가로 육중한 무엇인가가 도로위를 사납게 지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남부순환로를 지나 경인고속도로로 진입할 집게차들이겠지. 아마도, 차가운 쇳덩어리를 싣고 부둣가 공장으로 향하는 트럭이겠지. 언제부터 저 무시무시한 소리들에 익숙해졌던걸까. 그 소리가 두렵다. 나는 세계에 무관심하고, 그 댓가로 세계는 나에게 무관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