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새도록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앉아있자니, 그 적막함이 너무 좋아 그만, 이내 누군가 불러다 놓고 함께 고독과 우수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누군가의 고독 속으로 끌려 내려와 우두커니 그 고독에 참여해야 할, 그 누군가를 상상해보니, 그것도 참 안됐다- 하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다시 돌려보낸다.
고독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매우 세심한 배려와 믿음이 필요하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원자라도 둘로 셋으로 얼마든지 나누어 쪼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배짱과 27km에 이르는 거대한 환형 입자가속기 터널을 따라, 광속의 99.999991%에 이르는 낭만적인 속도로 돌고돌고 또 돌아, 종말을 각오하고서라도 서로를 향해 과감하게 돌진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다면 더욱 좋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인가?) 그럴 자신이 없다면, 화초와 고독을 나누는 수 밖에 없지.
하여간, 나는 왜 이토록 절대적으로 혼자 있을 때에만 뭔가 생산적인 일에 착수할 수 있을거라는 식의 강박 아닌 강박, 결벽 아닌 결벽을 가지고 있는가. 딱 봐도 청승이고 슥 봐도 허영인 이런 막돼먹은 고집을 가지게 되었을까? 를 생각하다가. 완벽하게 고독한 어떤 존재를 상상해보다가. 절대적으로 홀로 있는 상태에서만 작동하는 기계 따위를 떠올려보고는, 화성에 홀로 던져져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로봇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다.
낯선 땅, 낯선 행성의 지표 위를 홀로 점처럼 버려져 뒤뚱뒤뚱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그런 로봇. 삐죽 솟아나온 팔로 붉은 흙을 한줌 집어, 무슨 신성한 의식인 것처럼 자신의 머리위에 조심스레 뿌리고는 다시 또 정처 없이 나아가는 그런 모습. 팔을 뻗을 때 자신의 팔꿈치에서 나는 모터소리를 듣고는 흠칫 놀라고 마는 그런, 로봇의 표정까지를 떠올려 보았다. (이것은 R2D2와 C3PO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그런 절대 고독 속에서라면 로봇이라도 영혼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하간, 감정이입이 이미 그렇게 충분히 된 우리의 화성탐사로봇 피닉스 Phoenix에 대해 이제 막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려던 차, 안타깝게도, 지난 5월 24일, 미 항공우주국(이 단어는 어쩜 이리 멋있을까)이 피닉스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보도 자료를 발견하였다. 피닉스는 해가 뜨지 않는 화성의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비록 송신이 두절되었지만 우리의 피닉스는 당분간 탐사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퍽 리 Fuk Li, manager of the Mars Exploration Program at NASA's Jet Propulsion Laboratory in Pasadena, Calif, 씨가 말했다. 퍽(Fuk)씨는 이어, 태양이 다시 비추기 시작하면 피닉스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Manager of the Mars Exploration Program at NASA's Jet Propulsion Laboratory in Pasadena, Calif쯤 되는 사람이니, 피닉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 밖에. 피닉스가 화성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영혼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라는 내 생각에, 퍽(Fuk)씨라면 아마 동의하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눈을 질끈 감고 북받치는 감정에, 나를 부둥켜안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자리를 빌어, 2008년 5월 25일 홀홀단신 화성에 착륙하여, 화성에도 물이 존재함을 보고하는 위대한 성과를 이루어낸, 무인 탐사로봇 Phoenix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