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3, 2017

오늘도 새벽 여섯 시 전, 하루를 시작한다. 열시 전에 잠들어 다섯 시 즈음 잠에서 깨 한 시간 정도 늑장을 부리다 일어나기.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부터 한다. 뭔가 생산적인 아침을 보냈다는 생각에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후엔 새로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다. 다음 날을 위한 스케치를 미리 해 두고 자는 것. 그런 습관만 들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저녁에 운동을 할 계획이었는데 그건 포기했다. 

아침에는 의뢰받은 일을 했다. 솔잎, 버섯, 등 여섯 가지 식물을 그리는 일인데, 머리를 복잡하게 쓸 일 없이 무심히 묘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아침에는 여느때와 같이 산드라와 담배를 피웠다. 함께 시간을 맞춰 피웠다기 보다는, 언제나 처럼 그녀가 먼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급적 혼자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늘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아침부터 힘 빠지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역시나 그녀는 오슬로의 학교로부터 거절 통지서 얘기를 늘어놓는다. 또 자기 작업에 대한 불확신, 작가로서 자신감이 없다는 이야기. 거의 매일 듣다보니 응원해 줄 마음도 더는 나지 않아 건성으로 듣곤 했는데, 오늘은 홧김에 그녀가 가진 재능과 가능성을 웅변하듯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기분이 좋았는지 담배를 한 개비 더 말아 피우고는 얼굴에 화색이 돈다. 뭔가 자기도 이미 알고 있는데 다만 누군가로부터 듣고 싶었던 얘기를 들었다는 표정이라 기운이 조금 빠졌지만, 좋아하는 걸 보니 그래도 응원 해주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는 의뢰받은 책 표지 스케치 작업을 했다. 심리 치료에 관한 이야기인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기존의 내 그림의 주제들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기존 그림과 다르게 그리는 것이 어려웠다. 비슷한 주제로 너무 많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큰둥한 마음으로 그렸으나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중간에 필립이 들어와 어제 그리다 만 그림들을 칭찬해 주었다. 나름 새로운 시도랍시고 해보다가 영 어색해서 책상 위에 던져두었는데, 칭찬을 듣고 보니 다르게 보인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가 싶으면서도, 또 그만큼 어렵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을 좀 더 비우고, 그때 그때 해보고 싶은 시도들을 적극적으로 풀어 내 봐야겠다고 다짐한다.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일기를 쓰다가 졸리면 잠들 계획이다. 지금은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경계한다. 오늘 오후에 두 시간 쯤 햇볕이 작업실을 환하게 밝혔다. 그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 한 걸 보면, 적잖이 감동적이었던 모양이다. 올빅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을 때, '행복은 태양'이라고 대답한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